오피니언 사설

협력은 뛰어난 경영전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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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삼성과 LG가 모처럼 손을 잡았다. 두 회사는 LCD를 교차 구매하고, 북미 모바일 TV의 기술표준 채택에도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삼성전자는 LG디스플레이로부터 37인치 모듈을 공급받고, LG전자는 삼성전자 LCD총괄로부터 52인치 모듈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두 회사는 자신들이 생산하지 않거나 부족한 TV 패널을 상당 부분 대만 업체에서 수입해 왔다. 양사의 이번 협력으로 한국의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수성 전망은 한층 밝아지게 됐다.

지금 세계 전자제품 시장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일본 소니가 미국 시장에서 LCD TV 가격을 대폭 내리면서부터 한 치의 양보 없는 경쟁이 촉발됐다. TV 성능이 엇비슷해진 만큼 가격 인하 외에는 뾰쪽한 승부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생존을 위한 전자업체끼리의 이합집산도 한창이다. 얼마 전 대만의 TSMC, 파워칩, 뱅가드 등 반도체 3사는 10조원이 넘는 공동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한때 삼성과 손잡았던 소니는 일본의 샤프와 4조4000억원을 들여 LCD 공장을 세우기로 하는 등 양다리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숙명의 라이벌이던 삼성과 LG가 손잡은 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면서 위험 분산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화두로 등장했다. 그동안 천문학적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 순식간에 몰락한 전자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반면 전 세계를 무대로 필요한 부품을 값싸게 조달하는 데 성공한 기업은 눈부시게 도약했다. 더 이상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독불장군은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삼성과 LG의 제휴가 국내 업체 간의 협력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좁은 국내 시장을 놓고 아옹다옹할 때가 아니다. 해묵은 감정 때문에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된다. 이제 강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적응에 성공한 유전자가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적과의 동침’을 불사하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