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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최초로 베를린필 지휘 독일서 레오 보카르트 추모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전후 베를린 필을 최초로 지휘한 사람은 누구일까.
레오 보카르트(Leo Bochard,1899~1945)다.그러나 그의 이름은 세계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그로브 음악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나치 치하에서 안드리크 그라스노프라는가명을 사용했고 본명을 되찾을 겨를도 없이 역사 의 뒤안으로 사라졌기 때문.
지난달 베를린에선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보카르트의 서거50주기 추모콘서트였다.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은 말러 교향곡 제6번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로 그를 애도했다. 보카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범재판에 회부된 푸르트벵글러 대신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로 임명됐다.1945년 5월26일 보카르트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베를린 필홀이 아닌 티타냐궁에서 전후 첫 콘서트를 지휘했다.모스크바에서 태어난그는 베를린에서 음악수업을 마친후 명지휘자 브루노 발터와 오토클렘페러의 조수로 일했다.그가 베를린 필 지휘대에 처음 오른 것은 1933년.지휘 금지령이 내려질 때까지 그는 이미 30회이상 베를린 필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주변인물들의 모함을 받아 괴벨스 문화부장관으로부터 자격정지 명령을 받았다.그가 원래 외국인이었고 유대인 음악가들에대해 우호적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후 두번에 걸쳐 지휘금지령이 해제되기는 했다.40년11월 베를린 필과 바그너.드보르자크.차이코프스키를 연주했고,43년 3월 코다이 등의 현대음악 콘서트를 이끌었다.또 나치당국의 허락을 받아 스웨덴과 핀란드에 순회공연을 다녀오기도 했다.
38년부터 그는 레지스탕스 그룹 「에밀 아저씨」의 핵심멤버로활동했다.에밀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의사 발터 자이츠와 함께 그가 숨어 살던 베를린-스테글리츠 휜넨슈타이크가 6번지엔 지금도기념명판이 새겨져 있다.
「에밀 아저씨」는 추적당하는 정치범과 유대인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해줬다.전쟁이 끝나갈 무렵 식구가 늘어나 음식이 모자라자 가짜 신분증.여행허가증.진단서 발급도 불사했다.
45년5월 보카르트는 베를린 필과 함께 12년간 금지됐던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을 연주했다.흩어진 단원을 모으기 위해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전거로 베를린 시내를 누볐다.리허설장소는 달렘 성당의 친교실.보카르트가 베를린필을 마지막으로 지휘한 것은 45년8월5일이었다.
8월23일 밤 그는 한 영국대령으로부터 식사초대를 받았다.어느덧 통금시간 15분전.보카르트를 태운 대령의 차는 텅빈 거리를 질주했다.미군 순찰대가 정지신호를 보냈으나 이를 무시했다.
며칠전 러시아와 미 점령군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분위기가 매우 삼엄했다.그날밤 러시아 차량으로 오인한 미군 순찰대가 쏜 여섯발의 총탄에 맞아 그는 4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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