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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판소리 듣기 최고수' 33세 논술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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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조상현 명창이 북에 사인하는 모습을 정혜원씨(왼쪽)가 지켜보고 있다. 북은 장원에게 주는 선물이다.

판소리에는 '1청중 2고수(鼓手) 3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소리에 울고 웃으며 추임새로 반응해주는 청중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KBS 제1FM의 국악 프로그램 '흥겨운 한마당'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2일 연 '제1회 귀 명창 대회'는 '판소리 듣기' 고수(高手)를 뽑는 행사였다. 참가자들이 듣고 맞추기, 스피드 퀴즈, 즉석 판소리 공연에 맞춰 추임새 넣기 등 세 가지 유형의 문제 11개를 놓고 겨룬 결과 정혜원(33)씨가 장원을 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 '돈타령'이 들어있는 두 바탕을 묻는 문제가 나왔거든요(정답은 흥보가와 춘향가). 아는 문제인데 답변이 다른 분보다 한발 늦었죠. 이 문제만 빨리 맞췄더라면 만점을 기록할 수 있었는데…."

대회를 준비한 방송 제작진이 깜짝 놀랐을 정도로 정씨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 판소리를 이리 꿰고 있는 걸까.

"논술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쳐요. 대학(중앙대)에서는 문예창작을 전공했고요."

직업이나 전공과는 무관하지만 정씨의 판소리 사랑은 역사가 길다. 예닐곱 살 무렵부터 조상현 명창 등이 TV에 출연해 공연하던 창극을 즐겨봤다니 말이다. 그러다 대학에 다닐 때 김소희 명창의 '춘향가'를 듣고 판소리에 본격적으로 빠졌다. 이후 시중에 나온 판소리 음반은 모조리 수집해 듣고, 국립국악원 등에서 열리는 공연은 빼놓지 않고 보러다녔다. 친구나 선후배의 생일 선물로 판소리 음반을 주로 선물하고, 어쩌다 한번씩 가는 노래방에서도 '진도아리랑' 등 민요를 골라 부른다.

"주변에서 별나다고들 해요. 국악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부모님은 지금도 제 취미가 달갑지 않으신가 봐요. 남편도 같이 듣자고 하면 꺼리는 내색이고…."

정씨는 "가사와 가락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스며있어 들으면 들을수록 깊고 오묘한 맛이 있는 판소리의 매력을 많은 이들이 모르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책 읽기는 어릴 때부터 습관을 들여야 하지요. 판소리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귀가 트여야 좋은 줄을 알죠. 초등학교 음악교육을 국악 중심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정씨는 자신이 일하는 논술학원에서 곧잘 판소리를 교재로 활용한다고 했다. 수궁가.흥보가.심청가 중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소리를 들려준 뒤 내용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토끼가 육지로 나온 뒤 자라에게 욕을 해대는 장면, 흥보가 박을 타서 밥을 해먹는 장면 등은 해학적이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니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정씨 개인적으론 심청가, 그 중에서도 심청이 선인들에게 팔려가는 대목이 가장 맘에 든다고 꼽는다. "응축된 슬픔이 들을 때마다 가슴을 친다"는 것이다.

"기관지가 약해서 듣기만 하지 직접 배우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는 정씨는 "그 대신 판소리 공부 많이 해서 청중 입장에서 책을 한 권 써보고 싶다"고 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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