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비준 18대 국회 넘어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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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번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정부의 당초 시나리오는 4월 총선 이후 어수선해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임시국회를 개최해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먼저 비준안을 처리하면 미국 의회를 압박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17대 마지막 임시국회가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여야 간 정치 공방으로 변질되면서 비준안 처리는 손도 못 대고 있다.

FTA 비준안은 17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이달 말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한·미 양국이 2006년 1차 협상을 시작한 이래 17대 국회에서 한·미 FTA를 주제로 개최한 회의만 해도 특위 회의 26회, 통일외교통상위 회의 18회, 청문회 3회나 된다. 그간의 노력과 사회적 비용이 물거품 되는 셈이다.

비준안 처리가 18대 국회로 넘어가게 되면 모든 절차와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소위원회 심사를 거쳐 상임위원회 승인을 얻고 본회의에서 비준을 승인받는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것이다. FTA 이행을 위한 관련 법령 22개도 제정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17대 국회 해산에 따라 관련 법이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더 큰 문제는 FTA 비준을 맡고 있는 통외통위 소속 의원들이 18대에 대거 물갈이되면서 한·미 FTA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17대에서도 의원들이 한·미 FTA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미 FTA가 지연될 경우 이에 따른 기회비용 손실은 수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11개 국책 연구기관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미 FTA가 1년간 지연되면 한국이 지출하게 되는 기회비용은 무역수지 손실, 외국인 직접투자 손실 등 15조원에 달한다.

18대 국회 초반인 6월에 비준안이 처리된다 해도 미국 측에 FTA 비준을 압박할 수 있는 힘의 크기는 17대에서 처리하는 것보다 줄게 된다. 여름이 되면서 미국도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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