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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요즘 충무로의 젊은 영화인들 자본의 기능공 된 것 같아 아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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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내 영화를 이제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하겠다고 했어요. 과거 작품 중에 무시했던 것도 있고, 실패작이다 싶은 것도 있었는데, 이제 보니 하나하나 힘들게 찍었던 영화이고 소중한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앞으로 영화를 찍기 위해서도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관객들과 한 흐름으로 점검하고 싶었고요.”

20일부터 서울 종로의 서울아트시네마(허리우드극장)에서 ‘특별전’이 열리는 배창호(55·사진) 감독의 말이다.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년)을 비롯, 그의 영화 17편이 모두 상영된다. 당대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세웠던 안성기·장미희 주연의 ‘깊고 푸른 밤’(85년), 동시대 젊은 감성의 힘을 포착한 ‘고래사냥’(84년),‘기쁜 우리 젊은 날’(87년), 작가적인 새 스타일을 시도한 ‘황진이’(86년), ‘꿈’(90년) 등 흥행감독이자 작가로서 그의 영화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29세 젊은 나이로 감독이 된 그는 80년대에만 10편, 즉 한 해에 한편 꼴로 작품을 내놓았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대를 체험한 셈이다. “요즘 젊은 감독들은 실패할 기회도 없는 게 안타까워요. 실패를 통해 자기가 모자라는 것을 배우는 건데, 요즘은 한 번 실패하면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도 없으니.”

그는 대기업의 논리가 지배적이 된 요즘 영화시장을 두고 “젊은 영화인들이 자본의 기능공이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예전에는(제작비가 적아서) 자본의 리스크가 많지 않기도 했고, 상업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나 배급업자도 영화에 대한 문화의식이 있었어요. 흥행이 안 돼도 작품이 좋다는 것에 대리 만족할 수 있었지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도 새로운 제작 방식을 시도한 바 있다. 이정재·신은경 주연의 ‘젊은 남자’(94년)부터 제작을 겸했고, 아내 김유미씨와 직접 주연을 맡은 ‘러브 스토리’(96년), ‘정’(99년) 등도 그랬다. 최근작인 ‘길’(2004년)은 독립영화방식으로 만들어 재작년 개봉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세계 전환점으로 직접 제작을 겸했던 무렵과 영화 ‘황진이’를 꼽았다. “제 영화관, 인생관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을 무렵이지요. 젊은이다운 힘보다 담백한 깊이를 추구했던 작품이고.”

최근 3년간 재직했던 대학(건국대 예술영상학부)을 그는 지난해 초 그만뒀다. 영화감독의 현업을 위해 안정적인 교수직을 떠난 단호함은 꼭 30년 전, 그의 영화 입문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손꼽히는 직장이던 대기업 종합상사에 사표를 내고, 선배 이장호 감독의 휘하로 영화계에 들어섰다. 이런 그도 영화를 꿈꾸는 젊은이가 너무 많은 지금의 현실에는 우려를 아끼지 않았다. “영화를 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가 커요. 경제적 불투명성이 첫째지요. ‘누구나 일생에 한두 편의 소설은 잘 쓸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좋은 소설을 꾸준히 쓰는 게 어렵다는 거죠. 대학에서도 학생들에게 거듭 말했어요. 영화보다 중요한 게 인생이라고.”  

글=이후남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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