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커민스 지음
김수진·송설희 옮김
말·글빛냄
430쪽, 2만4500원
1815년 6월18일 벨기에 마을 워털루. 영국·벨기에·독일군으로 구성된 연합군 6만7000명과 프랑스군 7만3000명이 대치중이었다. 앞서 연합군의 파리 점령으로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갔던 나폴레옹에게는 이 전투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망설였다. 먼저 공격해 연합군에 원군이 올 시간을 주지 않아야 했지만 이상하게 우유부단했다. 의자에 앉아 팔꿈치를 무릎 위에 놓고 손으로 얼굴을 받친 그를 보고 한 장교는 ‘망연자실한 듯 보였다’고 했다.
나폴레옹이 망설인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사 저술 전문가인 저자는 “치질과 방광염, 뇌하수체 장애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누구도 감히 ‘아프십니까’라고 물을 수 없는, 황제가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치질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갑자기 통통해진 것도 살이 찌게 만드는 뇌하수체 장애 때문으로 추정됐다. 이는 우유부단함과 흐릿한 생각을 유발한다.
나폴레옹은 결국 공격 지시를 내렸지만 전투 중 연합군쪽으로 프러시아 원군이 도착했고, 결국 프랑스군은 패배했다. 오늘날까지 ‘압도적 패배’, ‘한 영웅의 몰락’과 동의어로 통하는 ‘워털루’(waterloo)라는 말이 생기고, 유럽 지도가 지금처럼 될 수 있던 배경이다.
책에는 이처럼 역사의 흥미로운 뒷얘기가 많다. 제목을 보면 역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다룬 책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미국 선거 관련 저술로 유명한 저자는 인류에 영향을 미친 36개 사건을 파고들어 드라마처럼 재구성한다. 카이사르가 예언자·종이쪽지·부인의 불길한 꿈 등으로 암살 시도를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자만했다거나,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지만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구한 것은 정신이상자 2명과 화폐위조범 4명에 불과했다는 이야기 등이다.
베를린 장벽의 첫 희생자와 마지막 희생자는 누구였는지, 케네디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설이 왜 허구인지 등 교양있는 대화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곳곳의 역사그림도 눈을 즐겁게 한다. 원제 『History’s greatest hits』.
백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