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인류에 큰 영향 미친 36개 사건’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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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만들어진 역사
조셉 커민스 지음
김수진·송설희 옮김
말·글빛냄
430쪽, 2만4500원

1815년 6월18일 벨기에 마을 워털루. 영국·벨기에·독일군으로 구성된 연합군 6만7000명과 프랑스군 7만3000명이 대치중이었다. 앞서 연합군의 파리 점령으로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갔던 나폴레옹에게는 이 전투가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망설였다. 먼저 공격해 연합군에 원군이 올 시간을 주지 않아야 했지만 이상하게 우유부단했다. 의자에 앉아 팔꿈치를 무릎 위에 놓고 손으로 얼굴을 받친 그를 보고 한 장교는 ‘망연자실한 듯 보였다’고 했다.

나폴레옹이 망설인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사 저술 전문가인 저자는 “치질과 방광염, 뇌하수체 장애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누구도 감히 ‘아프십니까’라고 물을 수 없는, 황제가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치질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갑자기 통통해진 것도 살이 찌게 만드는 뇌하수체 장애 때문으로 추정됐다. 이는 우유부단함과 흐릿한 생각을 유발한다.

나폴레옹은 결국 공격 지시를 내렸지만 전투 중 연합군쪽으로 프러시아 원군이 도착했고, 결국 프랑스군은 패배했다. 오늘날까지 ‘압도적 패배’, ‘한 영웅의 몰락’과 동의어로 통하는 ‘워털루’(waterloo)라는 말이 생기고, 유럽 지도가 지금처럼 될 수 있던 배경이다.

책에는 이처럼 역사의 흥미로운 뒷얘기가 많다. 제목을 보면 역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다룬 책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미국 선거 관련 저술로 유명한 저자는 인류에 영향을 미친 36개 사건을 파고들어 드라마처럼 재구성한다. 카이사르가 예언자·종이쪽지·부인의 불길한 꿈 등으로 암살 시도를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자만했다거나,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지만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구한 것은 정신이상자 2명과 화폐위조범 4명에 불과했다는 이야기 등이다.

베를린 장벽의 첫 희생자와 마지막 희생자는 누구였는지, 케네디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설이 왜 허구인지 등 교양있는 대화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곳곳의 역사그림도 눈을 즐겁게 한다. 원제 『History’s greatest hits』.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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