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안에서 계절에 취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1호 14면

가이세키 요리란 연회를 비롯한 각종 모임에서 술을 즐기며 먹는 정식을 말한다. 가이세키는 ‘회석(會席)’, 즉 모임의 자리를 뜻한다. 가이세키 요리는 ‘차(茶) 가이세키’에서 유래됐다. 에도 시대 바로 이전 1522~91년에 생존했던 다인(茶人) 센노리큐는 일본의 차 문화를 정립한 인물로, 맛있게 차를 즐기기 위해 공복을 다스릴 정도의 소량의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술과 함께 즐기는 일본 미식의 정수

현재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으로 알려진 가이세키 요리는 일본의 식문화가 개화된 에도 시대에 ‘차 가이세키’가 변형, 발전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에도 시대 이전의 일본 음식은 우리와 같은 한 상 차림이었다. 하지만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소량으로 하나씩 제공되는 코스 요리로 그 형태가 바뀌었다.

가이세키 요리는 1800년께 지금의 형태가 확립됐고, 이때 전문 요리점도 많이 등장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 지금의 ‘미슐랭 가이드’ 같은 가이세키 요리 전문점 평가서가 작성돼 전단지로 배포됐다는 사실이다. 일본 문헌에 따르면 가이세키 요리 전문점 평가는 일본의 국기인 스모 챔피언의 레벨과 같은 이름(요코즈나·오제키 등)으로 순위가 매겨졌다고 한다. 더욱이 이 평가는 관이 아니라 일반인이 주도한 것이라니 당시의 외식 문화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일본에는 가이세키 전문점이 많고, 특히 교토에 정통 고급 식당이 많기로 유명하다. 11코스의 요리를 맛보는 데 1인당 3만 엔 정도가 필요하다. 술을 함께 마시는 요리인데 술값은 제외된 가격이라고 하니, 정말 만만치 않은 가격의 고급 요리다.

제철 재료와 歲時에 맞는 장식을 사용한다
싱싱한 제철 식 재료를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지난 계절을 아쉬워하고, 오는 계절을 먼저 느낄 수 있도록 적당히 재료들을 안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5월 상차림에는 제철 재료인 두릅과 여름 재료인 갯장어를 이용한 요리를 제공한다. 장식 또한 계절감과 세시를 충분히 반영한다. 칠월칠석에는 음식 재료를 별 모양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릇으로 계절감과 예술을 표현한다
코스에 제공되는 80% 이상의 그릇을 계절감에 맞도록 준비한다. 일본의 유명한 가이세키 요리 전문점에서는 식기 창고가 반드시 필요할 만큼 다양한 그릇이 사용된다. 7월에 사용하는 ‘반딧불이 그릇’처럼 열두 달 중 한 달만 사용하는 그릇도 있을 정도다. 그릇의 문양이나 재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음식을 담는 양까지 철저히 조절하는 것이 가이세키 요리의 특징이다.

六味, 五色, 五方의 균형감을 살리다
단맛·짠맛·쓴맛·신맛·매운맛과 함께 일본인들은 감칠맛(예를 들어 다시마, 표고버섯, 가쓰오부시의 맛)을 중시한다. 가이세키 요리의 코스별 음식은 바로 이 여섯 가지 맛과 오색(하양·검정·초록·빨강·노랑)의 균형을 맞춰 제공된다. 다섯 가지 요리 방법(구이· 조림· 찜·튀김·날것)을 골고루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1즙 3채가 기본이다
가이세키 요리가 성립되려면 1즙 3채가 기본이다. 즉 1개의 국물 음식(스이모노)과 3개의 요리로 회(사시미), 구이(야키모노), 조림(니모노)이 구성돼야 한다. 제공 순서는 스이모노→사시미→야키모노→니모노.

80% 정도의 포만감이 중요하다
우리처럼 일본 코스 요리도 홀수로 품 수를 센다. 가이세키 요리의 품수는 보통 7, 9, 11, 13품으로 구성된다. 품 수는 ‘쇼쿠지(식사)’가 나오기 전까지의 음식 개수만 적용되는 것으로 밥과 디저트는 제외하고 세야 한다. 품 수는 훨씬 늘어날 수도 있지만, 그 수가 어찌 됐든 가이세키 요리사로서의 능력은 ‘모든 음식을 먹었을 때 80% 정도만 배가 부르도록’ 하는 것이다. 적당히 배가 부른 상태에서 술도 함께 즐기고, 음식 하나하나를 제대로 맛보고, 다시 또 한 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위함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