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제도의 존중 일깨워준 심슨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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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OJ 심슨사건에 대한 배심원들의 무죄평결이 있었다.
이 재판의 진정한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우리는 배심원 제도를 포함해 미국사회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음을 안다.모든 제도는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반영된 산물이므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형사법제도에 대해 논란을 벌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그들이 적어도 주어진 제도의 틀안에서 모두 정당하게 싸웠다는 점이다.심슨측의 변호사가TV에 나와 『우리는 피고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뿐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 주장이 역겹게 들 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나아가 그자신 변호사 출신인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이 직접 작성한 발표문에서 『배심원들은 제출된 증거를 보고 평결을 내렸다.우리의 사법제도는 배심원들의 평결을 존중하도록 요구한다.이순간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기도를 보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정치적으로 선택된 문구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항상 형사사건에는 가해자측과 피해자측이 있다.이들 사이에는 언제나 상충하는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문제는 실제 죄를 지은 자를 가려내야 한다는 실체적 진실 발견과 그 실체적 진실 발견을위해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절차적 진실보호가 그상충하는 이해관계를 다스려야 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흔들림없이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열사람의 죄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법언이 있다.
우리 헌법은 「피고인은 유죄확정판결을 받기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실제 그러한가.자식이 부모를 죽이는것과 같은 패륜적 범죄가 발생하면 상당수 사람들은 『재판은 왜필요해,바로 죽여버려야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살인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나중에 진범이 잡혀 풀려났던 경우도 적지 않다.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에 있는것이 아니고,그것을 운용하고 그 제도의 틀 속에 살아가는 모든구성원들의 의식이 바로 서있는가에 있다.혹시 우 리는 『한사람의 죄인을 잡기위해 열사람의 무고한 삶이 다쳐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슨재판은 그 결과가 안고있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절차적 진실의 중요성과 제도에의 존중에 대해 크게 일깨워주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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