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 후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1)
여행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그렇게 긴 여행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왜 장기여행(세계일주)을 권하는지에 대한 대답도 될 것이다. 사실 길고 긴 여행 후라도 한국의 삶으로 돌아와서 일상으로 복귀하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나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무언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 나를 바꾸었음을 느낀다.
여행 후 달라진 점이라면 첫째 ‘경험’이다. 인생에 있어서 다양한 경험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단 한 달만의 여행을 통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겪는다. 6개월 이상 또는 1년 이상의 여행이라면 어떠하겠는가. 일상에서 몇 십 년에 한번 겪을까 말까 할 일들을 여행 중엔 일주일에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게 된다. 생생하게 압축된 인생의 짠맛 단맛 쓴맛을 여행이 알려준다.
20시간 이상의 시간은 기본이며 가장 가까운 곳이라 생각하는 이동거리가 6,7시간이요 최장의 장거리 버스가 44시간이상인 남미의 버스를 타 본 사람에게 서울에서 부산간의 거리는 너무나 싱겁게 느껴진다. 몸으로 직접 체험한 일들이 인식을 더욱 쉽게 변화시킨다. 책이나 영화나 잡지를 통해서 보고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체험한 경험들이 몇 십 년간 한국이라는 한 공간에서 채워진 고정된 사고의 틀을 더욱 유연하게 바꿔준다.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졌고 삶의 변화의 폭은 더욱 빠르게 더욱 다양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여행이 주는 다양한 경험은 발 빠르게 변화에 맞추어 나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둘째. 열린 마음을 배운다. 장기 여행의 특성상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타 문화와의 소통 없이는 길게 여행하는 것이 어렵다. 이러한 연결 없이는 쉽게 지치거나 어려움이 생겨 긴 여행이 힘들어 진다. 새로운 장소로 이동해서 정보를 얻어야 할 때 이미 그곳을 여행했던 여행자나 현지인들이 주는 정보는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에서 주는 수많은 정보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정확한 실질적인 정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행자는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용기가 여행 중의 생활이 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길이 없다 하는 곳으로 길을 만들어 가며 걸어 갈 수 있는 일도 타인과의 교감을 위해 말을 거는 일도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긴 여행 중엔 그러한 일들이 바로 일상이다.
머리가 둘, 팔이 셋인 도깨비 마을에 머리 하나 팔이 둘인 사람은 괴물이 된다. 우린 나와 다른 것을 경계하고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 여행자에겐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너무나 새로운 것들을 이미 긴 시간 동안 받아들인 상태라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경계는 이전보다 약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는 모든 새로운 환경들에 대해 적응력이 더욱 빨라진다. 물론 받아들이는 연습이 쌓여 자연스레 경계의 빗장도 쉽게 풀려나간다.
셋째 삶에서 크게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고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매일 보는 가족, 생각만 있으면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는다. 거의 매끼 식사 때마다 먹는 김치나 된장국이 너무나 귀하게 느껴진다. 장기 여행은 일상의 삶에서 매일 보는 것 매일 듣는 것 매일 먹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보르네오 섬을 여행하면서 근 한달 동안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3주 정도 지나니까 한국어 사용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숙소의 고양이에게 한국말로 대화를 걸 정도가 되었다. 우연히 숙소에서 발견한 한국어로 된 정말 낡고 오래된 책 한 권은 보물이 되어 그 날 하루를 행복한 날로 만들어줬다. 그날은 한글로 된 글자를 읽는 큰 즐거움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거의 한달 여 기간이 지나서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서 동갑인 여행자를 만났다. 밤새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내가 한국어를 말 할 수 있고 내 대화를 한국어로 받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 다음 칼럼에 계속됩니다.
임한나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