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사법개혁 관련 발언파장-행정부.사법부 명예싸움비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에서 마련한 사법개혁안의 핵심 추진과제인 전문법과대학원 신설문제가 백지화 위기에 봉착했다.행정부의 대표격인 이홍구(李洪九)총리의「정부방침관철」발언에 대해 대법원이 강력반발함으로써행정부와 사법부의 명예싸움으로 비화됐기 때문이다 .
이제 사법연수원 존치(대법원)냐,전문법과대학원 설치(행정부)냐의 문제가 아니다.행정부와 사법부의 힘겨루기 내지는 감정싸움으로 변질돼 본말이 전도될 우려마저 있다.
李총리는 자신의 발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윤관(尹관)대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진의와 다르게 보도됐음을 해명하고 유감을 표시했다.또 6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적절치 않은 장소에서사법개혁에 대한 불필요한 얘기를 해 물의와 오해 가 생긴 것을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식 해명했다.
李총리의 이런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법원과 행정부간의 사법개혁을 둘러싼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전망이다.발언수위의 적정여부를 떠나 李총리의 발언은 적어도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와 세계화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李洪九.金 鎭炫)의 공감대였다.
청와대도 그동안 사법개혁안을 추진하면서 사법부가 보인 태도에얼마간의 못마땅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대법원은 그 나름대로 현실적 여건의 미비를 들면서 정부의 전문법과대학원 설립안에 반대해왔다.물론 법조계에서도 대법원의 입장을 강력 히 지지했다.
세계화추진위와 대법원은 한때 독립법인체 형식의 전문법과대학원설립에 거의 합의하기도 했다.그러나 대법원은 운영주체문제를 놓고 논의하다가 합의 자체를 거부했다.사법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는사법부로서는 전문법과대학원이 독립법인체로 설립 될 경우 예산과운영이 결국 행정부의 주도로 이뤄지리라는 판단을 했다는 후문이다. 사법부는『정부안의 사법시험에 응시하지도 않은 소수인사들이서투른 개혁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정부에서는『사법부가 자신의 살을 스스로 도려내는 개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며 사법부에 의한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다.
갈등의 양상이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뇌부 충돌로 확산되면서 李총리와 법원행정처장이 만나 이 문제를 조율하고 이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양측을 불러 전문법과대학원 설립문제를 매듭짓기로한 잠정계획도 무산될 수밖에 없게됐다.
청와대로서는 최근 대미(對美) 자동차협상을 둘러싼 외무부와 통상산업부간의 마찰에 이어 총리와 대법원이 갈등양상을 보이는데대해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3권 분립이 돼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싸움이 국정운영의 난맥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金斗宇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