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판박이 실수 재연한 얼빠진 AI 방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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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끝내 서울까지 침입했다. 광진구청 사육장 안에서 폐사한 닭으로부터 H5N1형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이다. 지난 4월 발생한 AI는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전북 김제에서 처음 확인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호남과 영남, 경기, 충청을 거쳐 서울까지 번졌다. 어제 춘천에서도 AI가 확인됐으니 사실상 전국으로 퍼진 셈이다.가뜩이나 사료값 폭등으로 고통받는 가금류 사육농가의 경제난 가중이 우려된다. 피해상황이 파악된 전북 지역에서만 12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아직 감염 경로와 발병 원인이 오리무중이라니 답답하고 안타깝다. 방역당국은 사육지 가금류를 모두 살(殺)처분하는 등 피해 확산 방지에 힘을 쏟고 있지만 이번에도 보고 지연 등 방역체계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 탁상행정의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광진구청 자연학습장의 꿩 두 마리가 폐사한 것은 지난달 28일이었지만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검사를 의뢰한 것은 닷새 뒤였다. 김제와 정읍에서 보고 지연으로 초동 대응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지켜보고도 판박이처럼 같은 실수를 재연한 것이다. 더구나 광진구는 서울시에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아 어린이날 50만여 명의 시민이 AI 발생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인근 어린이대공원을 다녀갔다.

AI는 치사율이 63%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인수 공통 전염병이다. 예방약만 있을 뿐 마땅한 치료제도 없는 데다 여전히 진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공포의 대상이다. 특히 올해는 전북 지역에서 의사 환자까지 발생해 국민의 불안은 더 크다. 다행히 감염된 가금류라도 75도 이상의 열에 5분 이상 가열해 먹을 경우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방역당국은 AI 확산 방지에 힘을 쏟는 것은 물론, 만일의 인체 감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가금류 조리와 섭취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AI 전염이 의심되는 의사 환자들을 철저히 파악해 치료와 전염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