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언론, 암살 배경 분석 "샤론의 정치적 위기 탈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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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하마스 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의 암살은 예상했던 후폭풍을 맞고 있다. 야신은 당장 '순교자'가 됐고,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비난에 직면했다. 이 같은 정황을 충분히 알면서도 이스라엘이 야신을 폭사시킨 이유를 영국의 BBC와 파이낸셜 타임스 등 언론들은 "무력시위"로 분석했다. 아리엘 샤론 총리가 국내 정치적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샤론은 지난 2월 중동평화를 위한 미국의 압력에 나름의 독자안을 내놓았다. 팔레스타인 밀집 지역인 가자 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과 함께 병력을 철수하는 평화안, 그리고 또 다른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을 고립시키는 분리 장벽을 친다는 강경안의 동시 이행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강경파들이 가자 지구 철수를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굴복"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강경파들은 '승리'라고 선전했다. 따라서 샤론은 "가자 지구에서의 철수는 패퇴가 아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힘이 있다. 다만 전략적 필요에 따라 양보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고 싶었다.

스페인에서 알카에다 열차 폭탄 테러가 터지며 반테러 여론이 전 세계적으로 고조된 상황도 힘이 됐다. 이라크 전쟁 덕분에 지역 내 이스라엘의 위상이 훨씬 강화된 것도 하나의 이유다. 이라크와 함께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이었던 이란 역시 서방세계와의 협력으로 돌아섰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전쟁을 일으킬 만한 인접국이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크게 볼 때 이스라엘의 도발적인 자세는 미국이 키워준 셈이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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