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출신 혁명음악가 정율성 선생‘두 생가’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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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5일 광주시 남구가 양림동에서 펼친 ‘한·중 오선지 축제’의 모습.

광주시 남구가 2004년 양림동에 세운 정율성 선생 생가 표지석

광주 출신의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1914~1976) 선생의 생가를 둘러싼 논란이 법정으로 비화했다. 정율성 선생의 한 집안인 ‘하동 정씨 문절공파 대종회’는 최근 광주 남구를 상대로 ‘정율성 선생 기념사업 등 추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대종회는 “정율성 선생의 생가는 동구 불로동인만큼 남구가 양림동에 세운 생가 표지석과 안내 간판을 철거하고 생가 복원과 거리 조성 같은 기념사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구는 “개인적 이득을 보려는 일부 불순한 세력이 근거 없는 자료로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남구는 양림동 생가를 한·중 우호 교류의 교두보로 삼아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입장이다.

◇“생가 두 곳 두고 국제행사는 망신”=대종회가 주장하는 정 선생의 생가는 동구 불로동 163번지 히딩크호텔 앞 마당이다. 대종회는 정 선생 부친의 제적등본과 토지대장,정 선생의 큰 형 학적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제적등본엔 정 선생과 형제들 이름이 올라 있고 큰 형의 아들 난에 출생지가 불로동으로 적혀 있다. 토지대장에는 정 선생 부친이 1912년 이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대종회는 ‘광주 정율성 국제음악제’의 위상이 높아지고 중국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이 터에 국비 지원 등으로 기념관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남구가 지난해 정율성 음악제를 광주시로 이관하고 4~5일 ‘2008 한중 오선지 축제’를 열자 기념관 건립 등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해 남구의 기념사업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대종회의 정찬구(55) 히딩크호텔 회장은 “시민들의 혼란을 막고 중국 관광객을 더 이상 속여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나섰다”고 말했다.

한편 남구는 2004년 정율성 학술대회를 벌이고 이듬해와 2006년 음악제를 열어, 중국 관광객의 관심을 끌었다.

남구는 정 선생의 자필 이력서와 부인 정설송 여사의 회고록 등을 들어 양림동 생가를 내세우고 있다.

자필 이력서에는 “나는 광주시 양림동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부인의 회고록에도 “율성은 1914년 전라남도 광주 양림동에서 출생했다”고 쓰여 있다.

결국 광주에 정 선생의 생가 표지석만 두 곳에 설치된 상태다. 중국 관광객들은 안내자에 따라 양림동 또는 불로동을 생가라는 설명과 함께 둘러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강원구(60) 전 광주시관광협회장은 “나름대로 조사해 본 결과 정 선생은 불로동에서 태어난 뒤 부친의 고향인 화순으로 갔다가 다시 양림동으로 이사해 유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며 “생가 두 곳을 두고 국제행사를 치르는 것은 망신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내실을 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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