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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하라, 여행하라, 그리고 삶의 마법사가 되어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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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여행’은 각각의 단어로는 별날 것이 없다. 하지만 두 단어의 조합은 어쩐지 은밀한 매력을 풍긴다. 거기다 ‘마법사’까지 더해진다면! 이 세 단어의 결합으로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은 조금쯤 아찔하다.
쾌락여행마법사는 여러 여행 블로거들 중에서 단연 압도적인 유명세를 자랑한다. 첫 페이지에는 마치 주문 같은 글귀가 있다.
“길은 떠나기 위해 있는가. 아니면 돌아오기 위해서…. 길 위에서 사랑하고, 확인하고 상처받거나 (…)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라. 그리고 길 위에서 무엇인가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말라. 우리는 그저 마법에 빠져들 게 될 뿐이니까”
다음은 이 마법사와의 인터뷰다.

Walkholic(이하 WH): 어째서 쾌락여행마법사인가?
쾌락여행마법사(이하 마법사): 자주 받는 질문이다. 우선 분명하게 말해두자. 섹스관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가 단지 쾌락이라는 단어를 좋아할 뿐이다. 내가 쓴 여행기에 누군가 마법을 뿌려주기를 바라는 욕심을 덧붙여 만들어낸 이름이다.
내 글은 쾌락적이라기보다는 우울하고 종종 음침하기까지 하다. 쾌락과 여행, 그리고 마법사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굳이 전문가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슬픈 노래나 시, 우울한 소설이나 영화가 슬픔의 좋은 치유제가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살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치료하기인 것이다.
내 블로그에는 조금은 우울하고 신날 것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대부분 여행을 통한 자기 고백적 여행담으로 채워져 있다. 이게 블로그 방문자들에게는 자신의 일상의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모양이다.
쾌락이란 말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말이다. 이왕 살아야하는 삶이라면, 즐겁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주 야만적으로…!

WH: 어떤 이유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나?
마법사: 나는 1980년생이다. 그리고 1995년에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영국과 벨기에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 그 이후에 간 곳이 캐나다, 미국, 멕시코, 괌, 스페인 등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는 부모님과 한 번 더 다녀왔다. 최근에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여행했다.
나는 80년대 생이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관심은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아 안정된 급여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 출세하는 것들이 우리가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인생은 아닐 것이다. 계절이 가고 또 오는 것을 알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느끼며, 내 마음에 사랑이 왔다가 떠나가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에 대해서, 티베트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심히 넘겨서는 안 될 것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천히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세상의 시계에 맞춰 사는 대신 나만의 시계를 가질 필요했다. 여행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WH: 여행은 천천히 사는 방법이지만, 놀이공원이나 극장에 가는 것과 비교하자면 꽤 많이 비용이 드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아직 학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마법사: 대학생이라면 오히려 기회가 더 많다. 해외여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대부분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여행을 떠났다. 1995년 유럽에 처음 간 것도 ‘글로벌 프론티어’에 참가한 것이었다. 국내 기업의 지원을 받아 유럽의 미디어랩을 둘러보고 한국의 방송광고 시장의 미래에 대해 레포트를 쓰는 스터디 투어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무슨 생각이었는지 어학연수를 결심하게 되었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떨어져 스스로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필요하다는 자각이 생겼다. 캐나다에서 1년 정도 머물면서 영어도 공부하고 Asian Society for the Intervention of AIDS라는 NGO의 크고 작은 활동에 참가했다. HIV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과의 정기적 미팅에도 참석했고, AIDS 환자를 위한 기금마련 걷기대회 같은 행사의 준비도 도왔다. 영어 공부도 공부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을 한 시간이었다.
2006년 여름에는 괌에 갔다. 괌관광청과 국내 기업의 지원을 받아 괌의 관광산업의 개선안과 마케팅안을 마련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닷새 쯤 다녀왔다.
그해 겨울에는 스페인에서 개최된 ASEM 청소년 회의 (ASEM YOUTH DIALOUGE)에 참가했다. 종교간 다양성 존중과 평화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ASEM 회원국들의 청소년 대표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공유했다. 많은 석학들과 종교 지도자들도 함께했다. 국제무대나 공동체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때 많이 자랐다.
당시 ASEM 재단에서는 여행 경비의 50%를 보조해주었고 나머지 절반의 비용이 문제였다. 먼저 학교 국제교류 관련 부서에 의뢰를 해보았다. 총장님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기독교, 천주교 가릴 것 없이 관련 기관에도 요청했다. 정말 뜻이 있으면 길이 있게 마련인지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충분한 지원과 도움을 주었다. 그때 회의 결과로 채택된 선언문은 한국을 비롯한 아셈 회원국 정부에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밖에도 잡코리아나 LG 등 기업체에서도 글로벌 프론티어, 글러벌 첼린지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관심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열린 문이다. 국제워크캠프기구나 국제학생교류기구 등을 통해 다양한 국제자원봉사나 워크캠프, 회의 등에 참석할 기회도 있다. 얼마나 적극적인가에 달렸다.

WH: 여행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마법사: 나는 여행기를 쓸 때 여행 자체를 다루지는 않는다. 여행을 하면서 문득문득 드는 생각, 그때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나,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꼼꼼히 살펴보면 여행지 자체에 정보는 많지 않다. 머리가 나쁜 탓에 갔던 거리 이름 같은 것들은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런 것들을 죄다 기록해둘 만큼 부지런한 편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모나리자> 그림 보다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소묘하는 단아한 여학생의 손동작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편이다. 높게 솟은 파도가 장엄하게 부서지는 발트해보다는 그곳에서 만나는 외로움의 감정에 더 많이 매료되는 편이다. 이것들이 내 짧은 여행에서 영원처럼 빛나는 보석들입니다.

WH: 앞으로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마법사: 이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죽기 전에 마지막이라고 이 질문에 답한다면 주저 없이 캐나다 벤쿠버의 잉글리시 베이라고 대답하겠다. 화려한 관광지들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소소한 일상들이 무심코 밀려왔다 밀려가는 해변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누군가를 사랑했고 헤어졌으며 기다리고 그리워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벤쿠버는 참 잘 차려진 도시다.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바다가 있고, 큰 땅에, 좋은 기후, 휘슬러와 록키산맥으로 닿는 경이로운 자연, 서로 다른 인종-종교의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메트로폴리탄이 그런 것처럼, 대도시 속으로 막상 들어가 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자신을 고립시키는 수많은 함정이 있잖아요. 감정이 현실과 괴리되기도 쉬운 곳이다. 소외감이나 고독은 마치 물을 마시거나 숨을 쉬는 것처럼 일상의 곳곳에 웅크려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살아가는 일’을 경험한 것 같다. 그곳을 스쳐지나온 게 아니라 그곳을 살았던 거다. 거길 떠나던 날 친구 로버트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넌 이제 네 두 번째 고향이 어디인지 알게 된 거야."

WH: 마지막 질문이다. 좀 잔인하고 냉정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다녀와서 잃어버린 것도 있나?
마법사: 각박한 현실세계에서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고도의 ‘경쟁력’ 정도 아닐까? 하지만 결단코 내게 불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매번 나는 남는 장사를 했다. 삶은 분명 선택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따져서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때가 언제나 닥친다. 문제는 그런 순간이 와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초치기’ 사회를 마하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시간이 없다.
마종기 시인의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내가 찾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찾아야한다.
그것을 찾기까지 방황은 끝나지 않을 테니까.

살면서 꼭 찾아야하는 그게 무엇인지, 정말 내가 구해야만 하는 그게 어떤 것인지 고작 살아본 인생이 채 30년도 안 된 주제에 어떻게 다 알겠나. 다만 그게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언제든 떠나야 한다는 사실만 믿고 있을 따름이다. 비단 여행 뿐 아니라 모든 삶이 마찬가지다.
여행이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이란 자각이다, 생의 부족과 넘침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쾌락여행마법사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kyome

장치선 객원기자 charity19@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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