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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한국현대사>45.문서에 나타난 韓美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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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61년 5월16일 새벽 박정희(朴正熙)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변이 발생했을 때 미국의 첫 반응은 혼란스러웠다.주한(駐韓)美대사관.미군사령부.美국무부의 반응이 엇갈리기까지 했다.미국의 일관되지 않은 반응은 군사쿠데타 발생 전후 미 국의 정책과의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어렵게 했다.특히 미국이 군사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사전에 부분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이에 적극 대응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이 됐다. 이런 점에서 美케네디대통령 기념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5.16군사정변 관련문서들은 미국의 정책을 사실적으로 파악하는 출발점이 된다.특히 군사쿠데타 전후 시기에 한국상황을 분석.보고한 美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들은 미국의 대한(對 韓)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논의된 내용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주목되는 문서는 61년 3월21일(미국시간) 美CIA가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한 「한국상황의 단기적 전망」이란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민주당 신.구파의 갈등▲공산주의자의 선동▲개혁의미진과 만연한 부패에 대한 대중의 불만▲경찰등 치안기구의 사기저하▲장면(張勉)정부의 친미노선에 대한 불만등이 한국정부의 정치적 위기를 가져온다고 분석했다.그러나 美Cж A는 이 시점까지 한국의 정치위기가 60년 4월혁명과 같은 새로운 혁명을 가져올 가능성은 적다고 보았고,군부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는 『한국정치의 장기적 전망이 암울하다』는 美CIA의 결론이었다.5.16 당시 美CIA국장이었던 앨런 덜레스도 『미국에서 일부 지도자가 지지하고 있던 장면내각은 부패했고,이승만(李承晩)정권을 타도한 민중의 기대에 응하지 못했다 』고 회고했다. 또 美CIA는 일찍부터 한국사회의 가장 강력한 기구로 등장한 군부에 주목하고 있었다.5.16 당시 美CIA한국지부장이었던 실바는 『한국의 군부는 그들에게 때가 왔으며,그들이 한국을 통치할 자격이 있다고 느껴온 지 오래됐다』고 파악 했다.그는 5.16이 발생하기 전 박정희의 측근 참모를 통해 쿠데타계획에 대해 듣고 이를 장면정부에 경고하기도 했다.
주한미군사령관 매그루더의 고문이었던 하우스먼(78)도 61년3월1일 실제 쿠데타가 있기 45일 전에 한국군의 쿠데타 기도가 있음을 상부에 보고했다.미국이 여러 경로를 통해 사전에 쿠데타의 징후를 파악하고 있었던 점은 확실하다.다 만 쿠데타의 실제 가능성과 시점에 대해서는 美행정부 내에서 의견이 서로 엇갈렸다. 5월 초 美행정부는 새로운 대한정책 지침을 작성하기 위한 실무팀을 구성했다.그러나 장면정부에 대한 평가에서 백악관과 국무부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이러한 시점에 5.16군사정변이 발생했다.
군사정변에 대한 미국의 첫 반응은 5월16일 오전10시30분그린 美대사대리와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나왔다.이들은장면총리가 영도하는 합헌적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그러나 이 성명서는 美국무부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5월18일(미국시간) 美대통령에게 보낸 문서에서 美국무부는 이 성명서에 대해 『한국에 있는 우리 정부기구들은 미국정부가 쿠데타세력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명백히 할 필요를 느꼈다』고 해명했다.이 성명서에 대해 하우스먼도 『합헌정부를 지지한다는 매그루더와 그린의 성명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미국이 방관했다는 얘기를 듣지 않도록 형식적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5.16군사정변이 발발한 당일 美CIA는 신속하게 박종규(朴鐘圭)소령등 쿠데타 핵심세력과 접촉을 시도하는 한편 美케네디대통령에게 한국상황을 보고했다.그러나 이 보고서는 아직 기밀해제가 이뤄지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현재 공 개된 美CIA문서로는 5월18일(미국시간) 한국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美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 주목된다.이 보고서는 급박하게 돌아가는한국상황을 미국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美CIA는 우선 쿠데타의 중심인물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장도영(張都暎)육군참모총장은 미국과 쿠데타세력 양쪽 모두에 우호적 관계를 갖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張은 현재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으로 각광받고 있으나 그는 아마도 허수아비일것이다.쿠데타의 지도자는 박정희소장이다.』 이 보고서는 또한 쿠데타의 주도자인 박정희소장이 『48년 이후에는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연루됐다거나 한국의 좌익세력과 연계된 사실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혁명정부는 공산주의자 제거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美CIA가 쿠데타의 중심인물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좌익세력과 연계가 없다는 점을 초기에 확인한 것이다.이 점은 매그루더가 5월17일(미국시간) 군사혁명위원회의 핵심인사에 대해 『특별히 좋지 않은 정보를 가진 것이 없다』고 보고 한 것과 일치한다. 또 18일자 美CIA보고서는 당시 관심의 초점이 된 한국의 경제개혁이 군사쿠데타라는 새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미국이 군사쿠데타에 부정적이었다는 통념과달리 쿠데타의 핵심세력과 그들의 노선에 대해 반대 입장 은 아니었던 것이다.
5월19일 군사쿠데타를 기정사실화한 미국은 군사정부를 상대로한 새로운 대한정책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5월31일 美CIA는 특별정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박정희소장이 주도하는 쿠데타 주체세력은 한국을 장악할 것이며 한국의 경제와 행정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을 것이다.고질적 부패를 막는데도 주력할 것이다』고 평 가해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경제.행정에 새 기풍” 또 이 보고서는 『쿠데타 지도자들은 이제까지 미국이 접촉해온 한국의 민간인들이나 한국군 고위장성들과 다르며 아주 새롭다』고 평가하고,이들이 내세운 부패척결과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다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 다.
이러한 美CIA보고서를 통해 볼때 미국은 61년의 한국상황을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군사쿠데타가 발생하자 쿠데타의 주도세력과 이들의 성향을 즉각 분석한 후 쿠데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움직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사연구소 연구팀〉 金祥道.鄭載憲.鄭昌鉉기자 李東炫(현대사 전문기자.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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