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종합청사의 권위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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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27선거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의 대민 행정 자세가 싹 달라졌다.민심을 얻기 위한 아이디어 백출이다.지난 날엔 근접도 하기 어렵던 시장실이나 군수실을 아예 1층 현관에 마련하고 민원인들을 직접 만나는 시장과 군수도 여럿 나타났다.
이것이 합당한 것인가는 따로 생각해볼 문제겠으나 어떻든 이제야 겨우 사람 대접 좀 받는 것같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과연선거가 좋고 자치가 좋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같은 지역인데도 「관선(官選)」이 군림하는 기관에 가면 사정은 여전히 「아니올시다」다.예나 이제나 민원인은 변함없이 찬밥이다.
권력 핵심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불평은 일반 사회가,그중에서도 특히 언론이 새 정부가 그동안 이룩한 脫권위주의의변화나 규제완화 실적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부로선 하느라고 했는데 국민은 왜 그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고 이즈막엔 「개혁」이란 말만 들어도 시큰둥해 하는지를깨달으려면 복잡한 과정이나 방법을 동원할 것도 없다.
청와대 바로 코 앞에 있는 정부종합청사에 민원인인양 방문해보면 담박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종합청사에 들어가려면 맨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게 문앞의 경비 경찰관이다.단(壇)위에 선 20대 초반의 경비 경찰관은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앞뒤로 살펴본뒤 내려다 보며 어딜 가느냐고묻는다.방문할 부처 이름을 대면 무슨 일로 가느 냐고 다시 묻고 때로는 방문할 국(局)이나 과(課)까지 캐묻는다.아무렇게나둘러대도 그만이다.그에겐 방문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나 자료도 없다.그래서 단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싸게 해결하려 적당히 둘러대고 들어가는 사람도 실제론 많다 .그런 사람조차 가려낼 능력도 없으면서 그저 습관적으로,그것도 무뚝뚝하기 짝이없게 캐묻고 있다.
더 기가 막히는건 그런 과정을 거쳐 문에 들어서자마자 또 다른 경찰관이 기다렸다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가지 다른 것은 이번에는 말하는 것등을 받아 적어놓는 것인데 때로는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도 한자 이름을 못 적어 음을 불러달라고 하는 통에 쓴 웃음을 짓게도 된다.그에게도 어떻게 둘러대든 「무사통과」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다음엔 금속탐지기를 지나 방문증 발급처로 가야 하는데 거기에서도 다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또 한번 방문처와 목적을 대야 한다.규정상 방문할 課까지를 기록하게 되어 있는지 局만 댔다가는 대체로 곤욕을 각오해야 한다.그리고 마지 막으로 방문증을 달았는지 살펴보는 눈길을 통과해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자유다.아니「자유」가 아니라「방황」이다.어느 부,어느 국,어느 과가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 어려운 여러「시험」을 통과해 왔는데도….
성격이 어지간히 느긋하지 않고서는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기분이다.마치 범죄 혐의자로 몰려 호된 신문을 받고 난 것처럼짜증에 피로가 겹친다.
정부종합청사 출입을 백화점 드나들 듯하게 해달라는 건 아니다.안전 등에 필요하다면 열번이라도 체크해도 좋다.그러나 그 체크가 귀찮게나하는 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것이라야 할 게 아닌가.아무렇게 말해도 식별 못할 것을 왜 몇차례나 묻고 적나.
방문자를 점검하려면 점검자가 미리 방문자의 명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사전 약속없이 온 경우라면 방문 희망처에 연락해 허락을 받아야 옳다.그리고 방문을 허용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안내받을 수 있어야 한다.선진국은 어느 나라건 이런 체계로 방문자를 관리하고 있다.
최근 이회창(李會昌)前총리가 어느 자리에서 규제완화가 제대로안되는 원인이 『행정의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 사고와 인식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바 있는데 종합청사의 권위주의적이고 형식적인 방문자관리 체계도 바로 그런 보기의 하나 일 것이다.새정부들어 인왕산과 청와대 앞길이 개방됐고 정부도 그것을 개혁과변화의 보기로 자랑삼고 있다.
그러나 걸어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종합청사에는 여전히 옛날 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개혁과 변화의 폭.파장이실제로는 어느정도인가를 가늠케하는 전형적 보기가 아닐수 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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