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견>지금은 가로쓰기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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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8면

1970년대말 미국신문산업의 경영이 어려워져 많은 신문사가 도산하던 시절에 이를 연구하던 학자들이 내린 결론중의 하나가 『신문은 아직도 일반독자를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고 있다』였다.그래서 신문 들은 독자들의 성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신문제작을 독자위주로 바꾸었는데뉴욕타임스같은 큰 신문들이 앞장섰다.
오늘의 한국신문은 20세기말의 의식과 문화를 가진 독자를 상대로 만들면서 지면디자인에 관한한 19세기식 구태를 고치지 못한채 견뎌내는 희귀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의 인구적인 사회분포(Demography)는 해방이후 엄청나게 바뀌었고,중년의 지도층이 된 해방둥이 이후 세대를보면 그래픽이나 비디오 문화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익숙해있다.
그런데도 전통적인 세로쓰기 신문체재가 주는 불편 과 그 부작용에 대해 좀처럼 문제제기를 않고 있다.여기서 말하는 부작용이란세로쓰기 신문이 독자로 하여금 제목만 훑어볼 뿐 내용을 별로 읽지 않는 버릇을 키웠다고 보는 학자들의 주장이다.한국신문들은많은 돈을 쓰며 독자조사를 실시하 면서도 그 내용을 좀처럼 공개하지 않고 달라진 독자들의 성향을 덮어둔채 이에 적응하기를 꺼리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독자조사 결과에 따르면 모든 출판물이 가로쓰기를 하는 데도 신문만 유독 세로쓰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신문 읽는데 불편이 많다고 불만을 보이고 있다.
나는 신문이 가로쓰기 디자인을 해야하는 다른 이유를 여기에 거론하고 싶다.내가 몸담고 있는 미주리大에서는 앞으로 닥쳐올 멀티미디어 시대에 방송과 인쇄매체가 같은 형태로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신문학과와 방송 학과의 구분을 없애 종합적인 교육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전문 편집기술자가 필요한 현재의 신문사 구조도 기자가 편집할수 있고 해당 부장이 직접 판을 짤 수 있는 체계로 바뀌고 있다.신문인이면 기사도 쓰고 판도 짜며 사진도 찍어야 한다는 것은 미국신문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해오는 일이다.
미국신문 디자인학회를 창설하고 지금도 그 학회 고문으로 있는미주리大의 대럴 모엔 교수는 『어떻게 하면 신문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신문지면의 디자인은집안의 거실과 같다.좋은 디자인이란 마치 여러 가지 가구를 보기 좋고 사용에 편리하게 배치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가구를 이리 저리 옮겨 보면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이렇게「옮겨 보는」디자인은 컴퓨터로 이루어지게 마련인데 현재 한국신문의 세로쓰기 체재에선 이것이 불가 능하다.
모엔 교수에게 얼마전 한국신문을 보여주며 디자인을 평하라고 했더니 한국신문의 1面은 신문이 아니고 동사무소의 게시판 같다고 혹평 했다.그래픽이나 그림이 보기에 불편할 뿐더러 신문이 지향해야 할 분석적(analytical)이고 평가 (assessment)적인 기사를 담기가 힘든 지면체재라고 지적했다.中央日報가 한글날을 기해 전면 가로쓰기를 실시키로한 것은 혁명적인발상이다.이를 정착시키기까지엔 많은 저항을 받을 각오가 필요하다.불행히도 가장 큰 저항은 언론인으 로부터 올 것이며 그리고비교적 적은 숫자이지만 주관이 강한 노년층 독자의 저항도 클 것이다.이들을 설득하는데는 인내심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가로쓰기 디자인이 무조건 좋을 수는 없다.좋은 디자인을 보이기 위한 연구와 실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특히 한자를 병용한 디자인은 시각적으로나 지각적으로 아름답고 실용적인 신문디자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이번 中央日報가 전면 가로쓰기 용단을내린 데 찬사를 보내고 그 성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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