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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기자의‘현장’] 유화업계 요즘 중동 보며 떠는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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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유정(油井) 굴뚝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앞으로는 보기가 힘들어질 전망이다.

종전에는 원유를 뽑을 때 상온에서 먼저 분리돼 나오는 석유가스(탄소성분)는 대부분 이렇게 태워 버렸다. 하지만 이 가스를 활용해 에틸렌(합성섬유·합성수지·합성고무 원료)을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중동 국가에서는 이런 공장을 잇따라 건설하고 있다.

반면 국내 유화업체들은 복잡한 단계를 거쳐 에틸렌을 생산한다. 중동에서 원유를 사 선박으로 경남 울산(SK에너지·대한유화), 전남 여수(LG화학·호남석유화학·YNCC), 충남 대산(삼성토탈·롯데대산유화) 공단까지 수송해 와야 한다. 그런 뒤 원유를 정제(35∼220℃)해 나프타 원료를 뽑고, 다시 이를 가열(850∼1200℃)해 에틸렌을 만든다. 공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업체의 에틸렌 원가는 중동 국가의 3배에 달한다. 중동 지역이 t당 198달러(2006년 기준)지만 한국은 687달러에 이른다. 국내 유화업계가 ‘올해부터 진짜 위기를 맞게 됐다’며 긴장하는 이유다.

◇값싼 중동산 제품 쏟아져=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석유화학산업 육성에 가장 적극적이다. 그간 이들 국가는 대부분 원유로 팔았다. 중동 국가들에도 한국과 같은 기존 공법의 공장이 있었지만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앞으로 신공법 등으로 가공해 부가가치를 더 높여 팔겠다는 것이다. 석유화학산업을 발전시켜 자국의 높은 실업률까지 해소하겠다는 포석이다. 대체에너지 개발 등으로 유가가 갑자기 떨어질 때를 대비한다는 차원이다. 이른바 ‘포스트 오일 머니’ 대책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올해와 내년에 가동할 신공법의 유화 공장만도 알주베일·라비·얀부 등 3곳에 있다. 알주베일 단지는 세계 최대 규모다. 국내 석유화학단지인 울산·여천 공단의 10배 이상 크기다. 이란도 반다 아살루예 공단 등을 잇따라 신설해 일부 공장은 지난해 말부터 가동했다. 이들 중동 국가의 에틸렌 생산 능력은 2010년까지 현재의 3배 수준인 연산 3300만t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중동 국가에서 새로 쏟아낼 값싼 에틸렌만도 한국에서 생산하는 물량(약 692만t)보다 더 많다는 게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의 분석이다.

◇국내 업계는 속수무책=어느 나라나 유화산업은 내수산업이다. 하지만 우리는 90년대 투자 자율화로 현대·삼성 등 대기업까지 이 부문에 뛰어들면서 수출산업이 됐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 과잉생산 논란까지 벌어졌다. 국내 유화제품은 현재도 내수 물량의 곱절이나 생산된다. 이렇다 보니 외환위기 때는 구조조정 대상 업종으로 지목돼 홍역도 치렀으나 중국 수출로 돌파구를 찾았었다.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의 김평중 기획조사팀장은 “지난해 LG화학과 LG석유화학의 합병에 이어 최근에는 롯데대산유화와 호남석유화학의 인수합병(M&A) 움직임이 있는 것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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