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저자 샐먼 루시디 본격적인 활동재개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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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슬람교를 비판한 소설 『악마의 시』를 냈다 이란의 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6년째 도피생활을 해온 인도출신의 영국작가 샐먼 루시디(48)가 신작장편 『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발표했다.
이와함께 그동안 모습을 일절 나타내지 않던 루시디가 처음으로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며 활동재개를 선언하고 나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루시디는 7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센트럴 홀에서 열린 「작가와 국가」를 주제로 한 문학토론회 에 토론자로 참석,밝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도피생활에 관해 얘기했다.
루시디는 도피생활중에도 경호원과 함께 여행하거나 문학토론회에참석할 때가 많았지만 모두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다.그러나 이번 토론회 참석은 사전에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등 본격적인 활동재개의 신호탄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루시디는 지난 6년간 피곤한 도피생활로 제대로 작품활동을 해오지 못했다.『악마의 시』이후 그가 발표한 작품은 동화 『하룬과 이야기 바다』, 단편소설집 『동쪽과 서쪽』등 2권뿐이다.
『무어의…』은 『악마의 시』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으로 루시디의 출세작인 부커상 수상작 『한밤의 아이들』보다 더 세련된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어의…』을 관통하는 한가지 메시지는 다원성이다.배타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에 쫓겨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 이 작품에는 다원성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고국 인도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게 묻어 나오고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의 통치가 끝나는 15세기말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며 공간적 배경은 스페인에서 인도에 이른다.역사의 격변기를 거치며 온갖 종류의 인종과 문화가 겹치는 시대와 지역이 소설의 배경을 이루는 셈 이다.
소설의 화자는 모라에스 모고이비라는 인물로 그의 별명이 무어다.그는 오랫동안 다양한 인종의 결합뒤에 태어난 다국적 혼혈아다.그의 몸속에는 인도인.무어인.포르투갈인.유대인의 피가 섞여있다.종교적으로도 그는 잡종이다.그의 아버지는 유대교 신자이며어머니는 가톨릭 신자다.
그리고 그는 남들보다 시간을 두배 빨리 보내는 특이한 운명을타고 났다.태어날때부터 그는 넉달 반만에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으며 서른 다섯살이 되었을때 그의 육체는 70의 노인이 돼 있다. 무어는 온갖 종교와 민족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여온 인도의 역사를 함축하는 인물이다.루시디가 무어같이 이질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가공의 인물을 설정한 것은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빚어내는 생명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에서는 또 인도라는 공간이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임을 자주 암시하고 있다.주인공 무어는 『모성은 인도의 가장 큰 사상이다.대지 같은 모성,모성 같은 대지』라고 말한다.
루시디는 이 상징적인 공간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시켜 유머러스하면서도 섬뜩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무어의…』에 대해 「희극과 비극과 환상이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소설」「시적 상징으로 가득 찬 현란한 문체」「사회적 메시지와 언어적 수사가 잘 결합된 소설」등의 격찬을 하고 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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