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름,22수의 주술"역문관 서우회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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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신비주의는 문화의 한 모서리에 있을 만한 좋은 위로(慰勞)이자 장식(裝飾)이다.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점단(占斷)을 좇아 길(吉)하면 희용(喜用)하고 흉(凶)하면 금기(禁忌)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름을 아는 인간의 겸손한 태도다 .
그것이 그 문화의 중심을 독차지하지 않는 한 신비주의를 미신(迷信)이라고 타박할 것은 못 될 것이다.신비주의는 과학에 대해 윤리적 좋은 보완(補完)일지언정 훼방(毁謗)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말에도 신비는 들어있다.복이 들어 있는 말이 있고 화가 들어있는 말이 있다.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 할 말,안 할 말을 가려서 쓴다.자기가 한 말은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온다고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다.
글자와 숫자에도 신비가 들어 있다.특히 한자(漢字)는 수천년이라는 나이를 먹었으니 글자마다 신령이 들어 가 살고 있지 않을 수 없다(나는 한자는 한자 문화권 사람의 글이므로 비록 케케하고 복잡해서 싫을 때도 있지만,한글과 함께 틀 림없이 우리글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자에는 소리와 뜻과 그림이 들어있다.그리고 획수(劃數)라는숫자가 들어 있다.그러니까 한문 글자 하나 하나는 무지무지 오래된 고가(古家) 한채씩과 그 집에 살았던 모든 것의 내력을 품고 있는 것이다.
서양에도 숫자의 신비를 사색한 사람들이 있다.희랍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숫자의 신비주의를 못내 맴돌았다.사람 일생의 구비구비 사건에 상응하는 숫자가 있다고 믿었다.
현대의 탁월한 프랑스 수학자 르네 통은 순수한 수학적 공식이먼저 발견된 다음 한참 있다가 그 공식으로 설명되는 물리적 현상이 발견되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 자체가 이미 신비한 것이라고까지 말하게됐다(그러나 과학은 신비주의의 대상은 엄연히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이름을 대체로 한자로 짓는다.부르기에음이 유쾌하고,풀어 보면 뜻이 아담하고,좋은 내력과 인연이 닿아 있고,획수가 복스러운 그러한 길한 이름을 짓는 것은 하나의「유식(有識)한 미학」일 것이다.
반대로 나쁜 이름을 금기하는 까다로움이라면 그것 또한 풍류(風流)로운 일일 것이다.
역문관 서우회(易門關 書友會)여러분들이 字와 數의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을 전통의 지혜와 시세의 통계에 의거해 극히 따져서 엮은 이『이름,22수의 呪術』이라는 책은 한번 보고 팽개칠 수는 없고 이름 짓는 옥편(玉篇)으로 삼아 집안에 잘 보관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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