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for Money] 재산관리인 선택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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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미국 동부 보스턴시는 미 건국 당시부터 명문가의 집합처였다. 이곳 부유층은 인도 카스트 제도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 비슷하게 ‘브라민’으로 불릴 정도였다. 이들은 굳이 아등바등 돈을 벌 필요가 없을 만큼 부자였다. 체면 구기는 일은 재산관리인에게 맡겨뒀다. 재산관리인들은 떼돈을 번다기보다 안정적으로 자금을 굴리는 데 치중했다. 현대적 의미의 펀드는 이런 재산관리인의 전통이 살아있는 보스턴시에서 탄생했다. 1924년 미국 매사추세츠투자신탁이 5만 달러로 언제든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펀드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펀드의 역사는 꽤 됐다. 남의 돈을 모집해 대신 투자하고 그 성과를 되돌려주는 상품은 70년대부터 명맥이 유지돼 왔다. 정부가 주도한 수익증권이 그 시초라 할 것이다. 그러나 민간이 주도한 진짜 뮤추얼펀드는 외환위기 직후 탄생했다고 봐야 한다. 국내 자본의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려는 정부와 새로운 투자상품을 기대하던 시장의 합작품인 셈이었다. 거부의 사설(私設) 재산관리인 정신에 입각해 있던 미국의 펀드와 성격부터 달랐다. 애초부터 우리의 경우는 대중이 보유한 소액을 어떻게 동원하느냐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미국보다 고객보호에 덜 민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랜 미국 펀드의 역사를 보면 우리 펀드 투자의 미래가 보인다. 미국에서 펀드 투자가 크게 성장한 시기는 크게 2기로 나눌 수 있다. 40~60년대와 90년대. 그 결과 90년대 중반에는 펀드 투자 액수가 상업은행의 저축액을 넘어섰다. 펀드가 미국민에게 가장 보편적인 투자 행태가 된 것이다. 펀드 투자가 안 좋았던 시기는 증시가 안 좋았던 70년대와, 증시가 급락했던 87년의 블랙 먼데이를 전후한 시기다. 이때 펀드 간 수익률 격차가 급격히 벌어졌다. 자신이 선택한 펀드에 따라 투자자의 운명이 크게 엇갈렸다.

미국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는 펀드 투자의 미래는 이렇다. 우선 앞으로 재테크의 핵심은 펀드가 될 수밖에 없다. 저금리 상황에서 저축의 한계에 부딪힌 자금이 펀드로 계속해서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펀드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현재 8000여 개 수준에서 몇 년 안에 그 10배로 증가할 것이다. 투자 대상에 대한 칸막이식 규제가 사라지면 투자 조합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익률이 높은 소수의 펀드와 수익률이 그저 그런 다수의 펀드로 확연히 구분된다. 일부 펀드는 수익률 하락은 물론 각종 추문에 시달리며 고객 돈을 대부분 날리는 불량 펀드로 전락할 것이다. 이는 투자처가 줄어드는 가운데 치열한 수익률 경쟁이 벌어지던 미국에서 이미 벌어졌던 일이다.

지난 3~4년간 우리의 펀드 투자는 일종의 ‘묻지마’ 투자였다. 글로벌 증시 활황에 힘입어 대부분의 투자가 괜찮은 수익률을 올려줬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물어가면서 하는 투자여야 한다. 재무 목표나 상황에 맞춰 펀드를 고르라는 조언은 원론적이다. 반면 남들이 권하는 펀드는 관행적이다. 그보다는 돈이 될 만한 투자 대상과 지역, 그리고 운용사를 고르는 방법을 사실상 혼자 힘으로 익혀야 한다. 펀드 개화기에는 인기 펀드에 돈이 몰리면 곧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는 경향도 있다. 남보다 앞서 좋은 펀드를 발굴하고 먼저 빠져나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증시를 비롯한 투자 대상의 상황이 나빠질 때의 대처 방법도 미리 강구해둬야 한다. 앞으로는 수많은 펀드 가운데서 옥석(玉石)을 가리는 일, 즉 어떤 재산관리인을 선택하느냐가 재테크의 핵심이 된다.

김방희 KBS 1라디오 ‘시사플러스’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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