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형대한민국CEO] ‘건축 현장 지휘하는 건설 두뇌집단’ 한국에 세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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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달러 덕분에 건설 역사(役事)가 벌어지던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설계사무소를 다니다 이 나라의 96개 동 아파트단지 건설현장에 투입된 30세의 김종훈 공무과장은 후진국의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많은 인원을 투입하고도 이익을 내기조차 만만치 않은 우리와 달리 CM을 한다는 미국·유럽 업체들이 직원 몇 명으로 수백만 달러의 용역료를 챙겨갔다. “열사의 땅에 와 비지땀 쏟는 우리 근로자들은 물론이고 저 같은 건설업체 관리자도 ‘노가다’에 불과하다는 걸 절감했지요.”

김종훈(59·사진) 한미파슨스 사장이 ‘CM 전도사’가 된 데는 이런 서러움이 씨앗이 됐다. 5년 뒤 삼성물산 건설부문으로 옮긴 그는 96년 삼성이 미국의 CM업체 파슨스(Parsons)와 합작 설립한 한미파슨스의 대표이사가 됐다. 필생의 과업을 이룰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가 부러워했던 CM(Construction Management·건설사업관리)이란 뭘까.

“한마디로 건설사업 전반을 관리하는 깐깐한 시어머니 역할이죠. 가령 서울 용산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다고 하면 땅주인인 발주자나 시행자를 대신해 건설 기획·설계·시공·사후관리 같은 과정을 몽땅 대행해 주는 겁니다. 시공업체를 고르는 일까지요.” 하지만 CM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긴 쉽지 않았다. 건설 공정의 어려움이나 복잡함을 잘 모르는 일반 사업주들은 “감리(공사감독)와 다를 게 뭐냐”고 반문하기 일쑤였다. 대형 건설업체들은 “공사를 따면 우리가 덤으로 해주던 일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작은 일감이라도 깔끔한 성공사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 시급했다. 2000년에 매출 100억원을 넘기며 자신감을 갖게 됐다. 서울 월드컵 주경기장과 타워팰리스, 부산 신항만, 마카오의 베네시안 카지노 같은 대형 사업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550여 건을 무난히 수행하면서 성장의 날개를 달았다. 2005년에 300억원대로 늘어난 매출은 지난해 800억원대로 불어났다. 까다로운 발주사를 설득하고 거대 시공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지식이 강해야 한다. 470명으로 늘어난 임직원들이 손수 입력한 1만3000여 가지 업무 노하우 DB는 회사의 지식경영 보고가 됐다. 건축사·기술사가 직원의 3분의 1을 넘고, 외국인 CM전문가 8명, 박사 5명이 가세한 두뇌 집단을 구축했다.

그렇다고 직장이 빡빡하고 살벌한 일벌레들의 모임이 돼선 곤란하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몸이 아니라 생각이 바빠야 창조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두 달 안식휴가제도를 운영한다든가, 매주 목요일을 자기계발의 날로 삼아 일찍 퇴근토록 하는 연유지요.” 그는 한미파슨스의 대주주가 된 뒤 성장의 과실을 나누기 위해 종업원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지난해까지 주요 언론의 ‘일하기 좋은 기업’상을 5년째 받기도 했다.

‘창조적 지식경영’의 하나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박리다매형 CM인 ‘e집’ 구상이다.“영세한 건설업체와 씨름하며 자그마한 건축물을 직접 지어본 이들 중에는 까다로운 건축법과 불투명한 건설관행에 질려 이런 나라에선 못 살겠다고 푸념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e집은 단독주택 한 채라도 CM이 돼 주는 맞춤 서비스다. 온라인(www.ejip.co.kr) 상 공정 관리로 원가를 최대한 줄인다.

김 사장은 93년부터 1년반 동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KLCC타워(일명 쌍둥이 빌딩) 현장소장을 지냈다. 그 뒤에도 연구와 경험을 쌓아 국내에서 손꼽히는 초고층 빌딩 전문가가 됐다. 높이 452m로 당시 세계 최고 빌딩이었던 KLCC 현장에서 김 사장과 고락을 함께한 삼성건설 후배들은 지금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두바이의 건설현장 책임자로 활약한다. 이 건물의 CM회사인 터너 같은 회사와 10년 뒤 어깨를 견주는 게 그의 꿈이다.  

글=홍승일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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