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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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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가 17세가 돼 ‘미스 불조심’ 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백만 달러가 생기면 어떤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앞뒤 재지 않고 즉각적으로 답했다. “백만달러가 있다면 당장 다 써버릴 거예요.”

오늘날 그의 재산은 당시 질문의 1천배 이상으로 불었다. 그러나 공언처럼 그가 그 돈을 다 써버리지는 않는다. 물론 숱한 명품을 사들이고, 화려한 생일잔치를 치른다. 동시에 뜻 있는 일에 거액을 쾌척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빛나는 이유는 그가 가난한 사람으로서의 삶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아서다. 그는 기꺼이 월마트로 가서 니베아 로션을 골라들고 기뻐하는 부류다. 언젠가 부자가 되서 좋은 이유를 묻자, 그의 답은 이랬다. “예전이라면 뭘 고를까 고민했던 5달러짜리 물건 두 개를 모두 살 수 있게 됐다.”

그런 그조차도 명품 브랜드로부터 노골적으로 무시 받은 적이 있다. 2005년 6월 프랑스 파리의 에르메스 매장을 방문했을 때다. 오프라와 에르메스측의 주장은 엇갈리지만, 그가 종업원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분명했다. 오프라는 분노했다. 영향력 있는 방송인답게 세계적 브랜드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명품 브랜드 소비자들이 국내에도 꽤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침묵한다. 영향력 없는 보통 사람들이어서 그런 것일까?

우리 주변에는 명품에 지배당하는 이들이 꽤 있다. 몇 달치 월급을 긁어모아 명품 가방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직장인들이 많다. 여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명품 브랜드로 온 몸을 휘감아야 만족하는 상류층도 적지 않다. 이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는 높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남성지·여성지·패션지·명품지 가릴 것 없이 명품 브랜드가 얼마나 근사한지를 설명하느라 지면을 다 할애한다. 비난 아니면 권장뿐이다. 명품 브랜드를 언제 사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양쪽 모두 답이 될 수가 없다.

우선 명품을 사는 데 거의 부담을 안 느낄 정도로 호주머니 사정이 좋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명품으로 온 몸을 칭칭 휘감지는 마라. 과시욕에 가득 찬 속물로 비칠 뿐이다. 오프라가 모욕을 당했던 파리의 에르메스 매장에서, 몇 년 후 미국의 팝가수 재닛 잭슨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쇼핑을 했다. 그러나 미국민들이 진정으로 존경하는 이는 한 번에 한두 개의 명품을 갖췄지만 25달러짜리 진도 즐겨 입는 오프라 쪽이다. 명품을 살 형편이 영 안 된다고 하더라도, 명품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짝퉁은 피하라. 국민 목도리나 가방이 된 버버리나 프라다는 너무 티가 나 착용한 사람의 품격을 오히려 떨어뜨릴 정도다.

여유가 되는 선에서 명품을 사되, 한 번에 한두 개 착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몇 달이나 몇 년치 월급을 모아야 한두 개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명품을 과감하게 포기하라. 대신 품질은 좀 떨어져도 분위기가 비슷한 중가의 좋은 브랜드 제품을 사라. 미국의 J-크류나 바나나리퍼블릭, 갭,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H&M 등이 좋은 예다. 어렵사리 해외 여행을 하게 되면 아웃렛을 뒤져 이런 브랜드 제품들을 사는 재미가 쏠쏠해질 것이다. 이런 제품으로 포인트를 주되, 국내 중저가 브랜드 제품 옷을 주종으로 하면 된다. 이렇게 나름의 스타일을 갖추고 나면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거 어떤 명품 브랜드야’라고 물을 것이다. 그럼 성공이다.

오프라가 싸움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에르메스측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토크쇼에 나가 사장이 공개 사과를 했는가 하면 홈페이지에 공개 사과문까지 실어야 했다. 누구든 이렇게 명품에 지배당하지 말고 지배해야 한다. 그래야 평생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김방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