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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갇힌 아이들] 1. 11살 영희는 매일 지하도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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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저소득층 밀집지역에서 낡은 시멘트벽에 기대앉아 있는 어린 소년. 다른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 있을 평일 낮시간에 소년은 혼자 금이 간 벽을 쳐다보며 뭘 생각하고 있을까.

▶ 지하철역에서

▶ 할머니집에서

▶ 노숙자 쉼터서

#1 중산층서 빈곤층으로=오늘도 영희(11.가명)는 엄마를 따라 서울 서대문구의 여관을 나선다. 간질환으로 일을 못하는 아빠와,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형편이지만 중학교 교과서만은 늘 끼고 있는 오빠(14)를 여관방에 남겨놓고서다.

영희가 가는 곳은 서울 신촌 대학가 부근의 전철역 출입구. 엄마와 함께 계단에 자리를 깔고 플라스틱 그릇을 앞에 놓는다. 엄마는 몇시간이고 영희를 품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러다 보면 그릇 안에는 하루에 6만~7만원씩 푼돈이 떨어져 있다. 이런 애꿎은 일상은 석 달 전부터 시작됐다. 비 오는 어느날 배가 고파 엄마랑 멍하니 지하철 출구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분이 영희에게 돈을 쥐어줬던 것이 지하철 계단 생계의 시초였다.

엄마는 번 돈으로 숙박비를 치르고 먹을 걸 사고 나면 2만~3만원씩은 남는다고 했다. "몇달만 더 버티면 월세방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때 되면 오빠랑 학교도 갈 수 있단다." 엄마는 맹렬하게 파고드는 추위로 떨고 있는 아이에게 희망의 말을 건네주었다.

일년 전까지만 해도 영희네는 경기도 수원에서 갈비집을 운영했었다. 그때는 하루에 70만원을 버는 것은 거뜬했단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사람들이 외식을 줄이고 광우병 파동으로 특히 육류 소비가 줄어든 데다 식당을 열 때 빌린 돈의 이자가 자꾸만 불어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영희네 가족의 운명은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몇달 뒤면 영희는 보호시설에 보내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 병석에 있는 아빠를 대신하고 있는 엄마의 강한 의지가 한가닥 희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나 예쁜 옷 사주는 것, 잊지 마." 영희는 엄마에게 말했다. "예쁜 옷 입으면 사람들이 자기를 못 알아볼 거라고, 그러는 거예요. 얘가." 엄마는 손을 눈가로 가져갔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극히 적은 반면 영희네처럼 절대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중산층은 많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빈곤 인구가 1996년 269만명에서 2000년 539만명으로 늘었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2 카드 빚에 생이별=생후 22개월, 5개월 된 희수.희정이는 지난 1월부터 부모 곁을 떠나 다른 가정에 얹혀 산다. 엄마가 몰래 진 카드 빚 1억원 때문에 부모는 이혼하고 말았다. 엄마가 나가버리자 혼자 아이를 양육할 수 없게 된 아빠가 수양부모협회에 "아내가 진 빚 때문에 월급을 몽땅 차압당한 처지다. 빚을 갚으면 아이들을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기정(10.가명) 삼형제도 지난해 11월 이 협회를 통해 새 '부모'를 만났다. 아빠가 사업을 하다 카드 빚을 지자 엄마는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삼형제는 일년간 거의 자기들끼리 의지하며 지냈다. 같이 사는 아빠가 아이들 돌보는 것을 외면해버렸기 때문이다.

지역 사회복지사가 삼형제의 딱한 소리를 전해듣고 집에 도착했을 때 냉장고 안에는 물통 몇개만 들어있고 아이들은 영양실조 상태였다. 결국 아이들은 강원도의 한 가정에서 살게 됐다. 수양부모협회 최나미씨는 "아빠는 애들을 데리러 오겠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무관심하고, 아이들도 아빠에게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카드 빚 등에 따른 신용불량자 수는 98년 197만명에서 지난해 372만명으로 거의 두배로 늘었다. 가족보호시설인 '살림터'의 홍진식 간사는 "보호가정 15곳 중 한두 가정을 빼고 신용불량 가정"이라고 말했다.

#3 이혼 이후="지금까지 남편과 같이 있었다면 아마 아이들은 학교에 못 다녔을 거예요." 한현숙(36.여.가명)씨는 잘라 말했다. 韓씨는 두달 전부터 서울 성동구의 모자 노숙자 쉼터에서 어린 두 딸과 살고 있다. 95년 결혼 후 단란하게 살던 韓씨 가정은 98년 남편이 운영하던 건축업체가 부도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세가 기우는데도 제어력을 잃은 남편은 도박.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2002년 韓씨는 두 딸을 데리고 오빠와 동생 집 등을 전전하며 도망쳤다. "남편을 피해다니느라 당시 큰딸(10)은 학교도 거의 못 다녔어요." 그는 9개월간 소송 끝에 지난해 11월 이혼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韓씨네를 포함해 15가족(38명)이 방 네개에 살고 있다. 쉼터 관계자는 "이혼이 많아진 탓인지 현재 다섯 가정이 입소 대기 중"이라며 "하루속히 이런 쉼터를 늘려야 가정 해체로 갈 곳 없어진 모자가정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현수(16.가명)는 2002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서울 중구의 부자 노숙자 쉼터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다니던 봉제공장에서 실직당하고, 병원비로 빚을 지게 되자 아버지는 중랑구의 판잣집으로 들어갔다. 2002년 물난리로 그것마저 잃게 돼 들어온 곳이 여기였다. 말이 쉼터지, 컨테이너박스 2개를 조립해 임시 거주공간을 만든 곳이다.

이 안에는 부자 노숙자 10가족이 수달들처럼 뒤엉켜 살고 있었다. 이곳 사회복지사는 "실직 등으로 말미암아 어머니가 가출하거나 이혼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자활능력이 생긴 아버지도 아이를 돌볼 엄마가 없어 쉼터에서 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이혼은 95년 6만8279건에서 2002년 14만5324건으로 급증했다. 그만큼 가정 해체로 인해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4 일해도 희망 없어=김정란(36.여.가명)씨는 2주일에 한번 딸(8)을 보러 간다. 모녀의 이별은 2001년 시작됐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식도암으로 사망한 후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병원비로 날리고 말았다. 게다가 이웃에 사기를 당해 사채를 1억원 가까이 지게 됐다. 낮에는 빌딩 청소부, 밤에는 주방일을 해 월 150만원을 벌고 있지만 사채이자 130만원과 쪽방 월세 15만원을 제하면 5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아득한 배고픔, 그 치명적인 현실에 딸을 서울 관악구의 청소년쉼터에 맡긴 것이다.

金씨처럼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 빈곤층'이 부쩍 늘고 있다. 부모의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 개인 빚 급증 등이 아이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2000년 157만원에서 2003년 201만원으로 큰 폭으로 오른 반면 비정규직의 임금은 84만원에서 103만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5 할머니 '집으로'=영화 '집으로'는 도시로 시집간 딸이 어느날 산골의 노모에게 아들을 맡긴 뒤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영화다. 60, 70년대에 실제 벌어졌던 사회현상이 최근 도시 빈곤의 골이 깊어지면서 다시 등장했다.

전남 함평의 어느 시골 중학교. 학생의 20%가량이 부모 형편이 어려워져 시골에 맡겨진 애들이다. 이 학교 한 교사의 말. "지난해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 22명 중 8명이 할아버지.할머니 손에서 크고 있었습니다. 시력을 거의 잃은 할머니가 혼자 다섯 손자를 키우는 경우도 있었지요."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임대아파트에 손자 둘을 데리고 사는 김춘자(76.가명)할머니는 일년 동안 연락 한번 없는 애들 부모가 매몰차고 야속하기만 하다. 할머니는 청소일을 하며 상우(16.가명)형제를 혼자 키우고 있다. 지지난해 애들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아버지도 지난해 가출했다.

할머니는 애들 부모가 남긴 빚이 자신이나 손자에게 넘어올까 봐 아들과 며느리의 주민등록을 말소했다고 한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차진숙(여)씨는 "요즘 임대아파트에서 손자.손녀를 데리고 사는 어르신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서처럼 상우는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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