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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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두석(1955~) '미소'

쓸쓸한 이에게는
밝고 따스하게
울적한 이에게는
맑고 평온하게 웃는다는
서산 마애불을 보며
새삼 생각한다
속 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그냥 절로 생성되지 않는다고

생애를 걸고
암벽을 쪼아
미소를 새긴
백제 석공의
지극한 정성과 공력을 보며
되짚어 생각한다
속 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생애를 두고 가꾸어 가는 것이라고 (후략)



그때는 참 좋았지, 라고 사람들은 오늘 말한다. 세월이 흘러 오늘이 먼 과거가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다시 그때는 참 좋았어, 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늘 그리워하는 그때는 오늘의 다른 이름임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생애를 바쳐 벼랑 위에 마애불을 새긴 백제 석공이여, 그대 또한 그대의 오늘을 한탄했는가. 아니면 한탄하는 모든 이의 한숨소리가 안타까워 벼랑 위에 속 깊은 아름다운 웃음을 새겼는가. 어쩌면 그 미소는 오늘이 꿈이며 사랑임을 아는 모든 이에게 바쳐지는 불립문자인지도 모른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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