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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식회사 대장정] 12. 쌍용차 인수 - 란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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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중국 5대그룹 진입이 우리의 목표다."

지난달 1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란싱(藍星)그룹 본사에서 만난 류셴츄(劉憲秋)그룹 해외담당 총괄 부사장은 이렇게 밝혔다. 중국 5등 기업인 중국화공무역총공사는 매출액이 1553억위안(약 23조3000억원.2002년 기준)이다. 그러나 석유화학업체인 란싱은 지난해 매출액 100억위안(1조5000억원)으로 중국 내 150위권 안팎의 그룹에 불과하다. 하이얼.롄샹 같은 일류기업과도 아직 격차가 있다. 그런데도 이같이 자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만간 란싱의 매출은 1500억위안(22조5000억원)으로 급증한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중국 내 1, 2위 그룹인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과 중국석유화공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국영 화공업체들을 대부분 란싱이 인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란싱은 조만간 자산 2000억위안(30조원)인 중국 제3위의 화공그룹으로 재탄생한다.

란싱은 이를 통해 쌍용자동차의 인수대금도 자연스레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자회사인 중처(中車)자동차서비스의 왕장(王璋)부사장은 "중국 정부는 능력있는 기업가는 과감히 밀어준다"면서 "이번에도 정부가 창업자인 런젠신(任建新.45)사장의 경영능력을 믿고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영기업 인수.합병 통해 급성장=란싱은 정부가 100% 주식을 갖고 있는 국영 화공기업이다. 그러나 출범과 성장은 任사장의 공적이다. 그는 26세이던 1984년 정부에서 1만위안(150만원)을 지원받아 중국 서부의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에 회사를 설립했다.

보일러와 각종 파이프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산업시설 청소업으로 시작한 것. 이후 란싱은 세제와 화공신소재 등 화학분야로 뻗어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란싱은 간쑤성 산하의 지방국영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96년 베이징으로 본사를 옮겨 중앙정부 산하 국영기업이 되면서 급성장했다. 정부가 무려 70여개 기업을 란싱이 인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화공업체인 란싱이 자동차산업에 진출한 것도 이때였다. 인수기업 중 28개사가 자동차 관련기업이었다.

란싱은 이를 중처 자동차서비스라는 소그룹으로 재편해 군용 지프.버스.트럭 등을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 정비사업도 시작했다. 중국 전역에 200여개의 자동차 수리.정비센터를 설립했으며, 군용차량의 80%를 정비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모비스와 합작, 중국에 베이징 모비스 중처를 설립해 베이징현대 자동차에 리어범퍼 등을 납품하고 있다.

란싱의 주종 품목인 화공분야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신소재 분야에선 중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유기실리콘은 중국 1위이자 세계 6위업체다. 건설 중인 10만t 규모의 설비가 가동되면 세계 4위가 된다. 디스크와 건축자재 원료인 비스패널A는 중국 1위며, 연소법PBT(엔지니어링 플라스틱)는 중국 유일의 생산업체다.

최근엔 정유산업 강화를 선언했다. 연산 500만t 규모의 정제능력이 있는 정유공장을 갖고 있지만, 유전개발 사업에 진출할 예정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3년 전 이 회사에 스카우트돼 온 수전 조(한국명 조인자)그룹 부사장은 "외국 유전개발.정유회사와의 제휴 및 인수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 지원과 리더십이 성공 비결=란싱의 성장엔 정부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국영 기업을 란싱에 대거 몰아준 것은 물론 기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국가화학연구소 등이 란싱에 기술을 넘겨줘 란싱은 국가 차원의 핵개발 및 로켓사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다. 통신설비사업을 시작한 것도 정부 덕분이었다.

그러나 란싱 측은 무엇보다 任사장의 리더십이 가장 큰 성공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趙부사장은 "란싱 임원들은 휴일도 없이 1주 7일 근무한다"면서 "중국에서 이렇게 일하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任사장이 솔선수범하니 아무도 불평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王부사장은 "국영기업을 인수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任사장이 맡은 기업은 모두 성공했다"고 밝혔다. 가령 간쑤성 정부는 화학공장을 任사장에게 맡겼다. 그는 이 회사의 수준으론 화공업에서 미래가 없다고 판단, 주류공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종업원들은 모두 재교육해 한 명의 감원도 없이 변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백년고독(百年孤獨)'이 란싱에서 생산되는 술이다.

◇특별취재팀=김영욱 전문기자(팀장), 김형수.최형규.김경빈 기자, 친훙샹 중국 베이징대 교수,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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