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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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늙음」의 일본말은 「오이(おい)」다.그러나 왜 그렇게 부르는지 일본사람은 모르고 있다.「오이」의 어원(語源)이 우리말인데 「일본말은 한국말과 상관없다」고 우기고 있어 말의 뿌리를보지못하는 것이다.
「외로움」을 뜻하는 「외」의 옛말이 「오이」다.이것이 일본에가서 「늙음」을 가리키는 낱말이 되었다.말 뜻이 발전된 셈이다.늙는다는 것은 필경 외로워지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늙음」은 우리나라에서도 「오이」라고 불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왜냐하면 「노망(老妄)」을 가리키는 일본말 「오이보레(おいぼれ)」는 「늙어 버려진」「늙어 망가진」상태를 뜻하는 우리말에서 빚어진 까닭이다.복합어(複合語)인 경우는 대체로 한 계통의 낱말로 봐야 한다.
『노인헌화가』에 등장하는 노인도 고독한 사람,산중에 외따로 살며 학문이나 무술을 닦는 도사였던 것은 아닐까.그래서 아무도오를 염의도 내지 못한 벼랑에 핀 철쭉꽃을 쉽사리 꺾어 올 수있었을지도 모른다.노래마디 속에 언뜻 비치는 이중(二重)의 뜻이 노인의 기운찬 정력을 일러주는 것도 같다….
서여사는 긴 설명 끝에 노래의 첫 구절을 가리켰다.
『자줏빛은 옛말로 「짓배」또는 「딧배」였습니다.바위는 「바고」「바호」라 했고요,가장자리의 신라말은 「갓」「가」였지요.이건현대말과 같아요.그러나 백제말로는 「앗」「아」였습니다.』 「紫布岩乎希」는 「딧배 바고 갓희」또는 「짓배 바고 가희」라 해독됩니다. 그런데 「기」는 옛말로 「신」이나 「왕」「귀인」 또는「남근(男根)」을 의미했습니다.「짓배」라고 한다면 「귀인의 배」「귀인의 여자의 배」,즉 「귀인의 여음(女陰)」을 뜻하는 낱말도 될 수 있는 셈이지요.한편 「바고 가희」는 「박아 가이」란 말과도 통합니다.
자,그럼 어떻게 됩니까? 「귀인인 순정공(純貞公)의 여자와 관계하고 가리」란 어처구니없는 성애(性愛)의 노래마디가 배어나오는 거예요.』 서슴없는 서여사의 말에 모두들 아연실색하면서도재미있어 했다.신기한 요술의 뒤안을 보는 기분이었다.
『유머 감각에 뛰어난 노인이었나 봅니다.』 아버지도 신나는 듯 웃었다.
『좀 체제비판적인 냄새가 풍겨지는 것같지 않아요?』 아리영의코멘트에 정여사도 끄덕였다.
『보통노인같진 않네요.뒤에 숨겨진 다음 구절의 뜻이 궁금해지는데요.』 『그 다음은 아직 풀지 못했어요.어때요? 앞으로 우리 모두의 숙제로 각자 풀어보기로 하는게….』 서여사의 제안에아리영 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어림도 없습니다!』 『한가지 힌트를 드릴게요.』 서여사가 또 야한 말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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