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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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상운의 입가에는 빙그레 미소가 그려지곤 했다.그래서 상운은 가끔씩 마스터베이션하는 기분으로 그 때를 떠올리곤 했다.
…희경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깨끗한 알몸으로 누워 있었고 거지는 한 쪽에서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희경은 깜짝 놀라 자기 몸을 이리저리 만져 봤다.다행히 몸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그래도 모를 일이다.감 쪽같이 거지가 스쳐갔을 지도….거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희경이 옆을 보니 한 켠으로 나이트 가운이 놓여 있었다.희경은 급한대로 그것을 둘러 입었다.그 옷은 부드럽고 화려한게 「거지주제에…」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희경은 거지에게 다가가 눈 앞으로 손을 흔들어 보았으나 거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희경은 거지에게서 시선을 떼 주위를 둘러보았다.그곳은 마치 깊은 동굴인양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쪽에서는 종유석도 보였고 물방울도 떨어지고 있 었다.희경은바깥 쪽으로 살금살금 나갔다.이상하게 동굴은 전반적으로 환했다.희경이 한동안 걷자 곧 동굴 입구가 보였다.희경은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으나 곧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한가운데로 아래로는 짙은 수풀이 저 멀리 자리하고 있었다.위로는 절벽과 파란 하늘만 보이는 게 이곳은 깊은산속인 듯했다.희경은 한숨을 쉬고 혹시 아래로 내려갈 길이 없을까 두리번거릴 때 마음 속에 이상한 느낌이 떠올랐다.갑자기 저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이다.깎아지른 듯한 저 아래는 희경이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으로 뛰어내릴 수 있기라도 한양 친근하게 자꾸 마음이 쏠렸다.그래서 희경은 좀 더 자세히 볼 양으로 근처 바위를 꼭 잡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아래로 돌들 이 단계 단계 튀어나온 모습들은 뛰어내릴 때 걸어가듯이 한 발씩 딛고 내려가면 될 것만 같았다.희경은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이러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뛰어내릴 것 같아서 였다.그래서 그곳으로부터 몸을 돌리려고 할 즈음 갑자기 몸이 붕뜨더니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희경은 기겁을 해 바위를 꼭 붙잡았으나 그녀의 몸은 어느 새한바퀴 돌아 뒤집어지더니 아래로 직행하는 것이었다.희경은 긴 비명과 함께 다시 정신을 잃었다.그녀의 뒤에서는 상운이 웃고 있었다 .상운은 리모컨을 가지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장착된가스를 부풀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안으로 떨어진 것이었다.가상현실의 공간으로 떨어지면서 그녀는 실신을 한 것이다.희경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처음과똑같은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녀 옆에 서는 거지가 가부좌를 틀고 상념에 빠져 있었다.희경은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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