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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한·미 전략동맹 관건은 북핵 공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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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미 정상회담 때 캠프 데이비드의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행해진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은 ‘21세기 전략동맹’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는 한·미 동맹이 냉전기의 혈맹(동맹 1.0), 탈냉전기의 과도적 동맹(동맹 2.0)으로부터 벗어나 명실상부한 21세기형 동맹(동맹 3.0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냉전기 한·미 동맹은 큰 틀에서 볼 때 미국은 안보 제공자, 한국은 안보 수혜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미 의존관계가 두드러졌다. 탈냉전기의 한·미 동맹, 특히 과거 10년간 양국 관계는 과도적 불확실성이었다. 이로 인해 상호 의존관계의 정립보다는 불균형적 의존관계의 ‘탈피’ 쪽에 역점이 두어져 상호간 신뢰 저하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향후 한·미 동맹은 ‘국가안보’와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이 병존하는 21세기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한·미 전략동맹은 지리적으로는 한반도를 넘어 아태지역과 세계적 차원으로 동맹의 범위를 확대하고, 내용적으로는 군사동맹을 기축으로 하되 정치·외교·경제·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공고히 한다는 것이다. 양국 동맹이 ‘전술동맹’이 아닌 ‘전략동맹’이어야 하는 이유는 미국과 파키스탄 관계처럼 9·11을 계기로 ‘급조’된 동맹과 달리 민주적 가치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구축에 관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견고한’ 동맹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7월 답방이 성사된다면 그 이전까지 양국의 당국자 및 전문가들의 밀도 있는 협의를 토대로 ‘21세기 전략동맹’의 구체적 청사진이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11월 경주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역시 한·미 동맹의 비전으로 ‘포괄적·역동적·호혜적 동맹’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초 6자회담 2·13 합의가 나오기 전까지 양국 관계가 삐걱거렸던 이유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불협화음과 함께 포괄적·역동적·호혜적 동맹을 위해 양국이 ‘어떻게’ 협력해 나갈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인 ‘콘텐트’ 협의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21세기 전략동맹의 각론을 정립하기 위한 양국 간의 향후 협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북핵 접근법, 한·미 FTA 비준 시기, 비자면제 협정 체결 조건, 방위비 분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의 기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및 미사일방어(MD) 참여 여부 등을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 현명한 ‘주고받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 측 당국자들이 각 이슈들 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 PSI와 MD에 당장 들어갈 의사가 없다면 한·미 FTA를 우리 측이 먼저 비준하고 이를 미국 측의 FTA 비준 전까지 PSI와 MD 참여 요구에 대한 ‘방패’로 활용하는 식이다.

치열한 ‘샅바 싸움’ 속에서도 한·미 양국이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핵 문제에 관한 공조체제를 잘 유지해야 한다. 철저한 공조체제란 북한의 변화 방향에 대해 합의하고, 정보를 완벽하게 공유하며, 적절한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을 뜻한다. 북한 핵 문제가 핵을 포기하기 전 리비아의 핵 문제와 다른 점은 북한의 핵 능력이 리비아보다 훨씬 강한 반면, 핵 프로그램 ‘신고’ 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리비아보다 훨씬 약하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북핵 신고에 대한 ‘검증’ 과정이 험난한 여정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이 ‘철저한 검증’ 없이 대북관계 개선을 해나갈 경우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전략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도록 한·미 공조체제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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