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방의회의 "바늘도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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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유민주주의의 뿌리와 줄기는 대의제도다.그리고 대의제도는 선거를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다.대의제도는 흔히 직접민주주의의 불가피한 대안으로 인식된다.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는 사실 「국민에 의한 국민의 통치」가 아니라 「국민으로부 터 나온 엘리트에 의한 국민의 통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면박을 받기도 한다. 요컨대 국민은 단지 선거라는 이름을 빌려 『예』 또는 『아니오』,이 단 두마디만을 말할 수 있는 주권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평인 것이다.
일찍이 루소도 국민은 선거때만 잠시 그러할 뿐그 직후에는 또다시 노예신분으로 전락하는 허울좋은 주권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투덜대지 않았던가.그러므로 최소한 선거의 공정은 자유민주주의가생존하기 위한 결정적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가 절규되었던 5,6共시절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선출되었다거나 선거부정이 활개쳤다는 것은 실로 역사의 우스갯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문제는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떠들썩한 마당에도 선거과정상에 드러나는 불법과 비리의 본질 그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에까지 그것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공천장사를 하는 정당이 공천장사를 하는 국회의원과 시.도의원을 낳고,그것이 결국 교육위원 공천장사에까지 연결되는 비리의악순환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우리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질 교육위원을 뽑는데 검은 돈과 황금이 뿌려졌다는 사실이다.은밀히 금품을주고받던 때묻은 손과 입으로 과연 어떠한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끔찍한 일이다.그러나 이러한 비리가 어디 경기도와 인천에만 국한됐겠는가.더구나 새로이 선출된 지방의원들은 업무파악도 하기전에 뇌물파악부터 시작한 꼴이니,과연 이들에게 지방자치의 숭고한 대업을 맡겨도 좋을지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우선 시민.사회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통합선거법」제87조를 폐지함으로써 시민적 선거감시체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장치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는 그를 통해 특히 저질.무자격 지방선거 후보자를 시민의 이름으로 문초하고 심판하는 사회적 기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비리를 부채질하는 교육위원 2중간선제를 폐지하고,그것을 교사.학부모 등 교육주체가 직접 관여하는 선출방식으로 대체할 필요도 있다.
또는 이번에 도입된 비례대표제를 활용해 양심적인 교육전문가를정당 차원에서 미리 지명하고 그것을 유권자들이 직접 선택케 하는 방안도 강구해 봄직하다.
어쨌거나 이런 와중에서 그나마 반가운 것은 검찰 등 사정(司正)기관의 비리척결 자세가 단호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개혁적 성향」의 집권여당 지구당위원장의 금품수수에까지 메스를 들이댈 정도면 그 기상을 가위 짐작할 수 있 지 않을까 싶다. 「첫술에 배 부르랴」가 아니라「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경계심으로 사정당국은 모질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져야 한다.그리하여 선거를 다시 실시하는 파국을 맞더라도 우리는 지방의회의 이 타락한 첫 걸음마부터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된다 .
우리는『재선거를 몇십 차례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금권선거를 반드시 뿌리뽑겠다』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선거사정과 정치개혁 의지를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더구나 우리 후손들의 백년교육과도 깊은 관련을 맺는 사안이라면 더이 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서강대교수.「참여연대」의정감시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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