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자아형성" 필립 머시먼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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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근대 의학에서 심리요법이 등장한 것은 19세기말 본격적인 심리학자로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등을 펴내면서부터였다.그 당시만 해도 심리요법이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고 「자아분석」(self-analysis)으로 불렸다 .그후 1백년 남짓한 기간에 심리요법은 현대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료분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정신과의사들이 내는 책들이 독자들의 인기를 얻는것도 그런 맥락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이런 현상은 최첨단 소비사회인 미국에서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지난해 통계를 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정신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 이 6만여명에이른다.이런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자아형성』(Constructing the Self,Constructing America.Addison Wesley刊)은 심리요법이 이처럼 급성장하게 된 배경과심리요법의 연구대상인 자아의 시대별.지역별 변화 상을 살피고 있다.저자는 역사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필립 커시먼.
총 10개장으로 나눠 프로이트.융.해리 설리번.멜라니 클라인등 심리요법전문가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최면술.긍정적 사고등 시대별로 인기를 끌었던 치료요법의 허실을 분석하고 있다.무엇보다인간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자아의 변화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이 책에 따르면 시대에 따라 자아 개념도 끊임없이 변해왔다.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자아의 개념이 깊지 않고 평면적이었으며,헤브루인들은 공동체적이면서 신과 동격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계몽시대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다.지역별로 보면 폴리 네시아의 원주민인 마오리족 사이에는 종족의 유대를 중시한 나머지 현대적의미로서의 자아 개념이 희박했다.
마오리족의 경우 종족에서 분리되면 곧 인간으로서의 모든 지위를 상실하는 것으로 여겼다.또 네팔의 로호룽라이라는 종족은 자아 개념에 사회조직뿐 아니라 정신세계와의 연계를 중시했다.
저자는 현대인의 자아의 공통적 특징으로 공허함을 꼽는다.개인주의가 팽배함에 따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고립되어 공허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 공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인들은 끝없는 소비행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들어 「공허한 자아」(empty self)란 개념은 광고가 절대적 영향력을 구가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차대전후 전인류가 공통적으로 느끼게 된 공허감은 공통의 신념과 전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공허함을 광고가 파고 들었던 것이다.
예컨대 미인이나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광고를 대하면 모델들이 「못난 사람들」이라는 비난과 야유를 보내는듯한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그러면 보통사람들은 광고모델이 암시하는 아름다움이나 예술성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인데도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광고에 나오는 물건들을 사려고 아우성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광고는 「공허한 자아」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다시 말해 현대사회에 심리요법 전문가들이 아무리 많아도 사회구조적인측면을 건드리지 않는한 진정한 심리요법은 불가능하다 고 저자는진단한다.
『끊임없는 구매와 잉여상품의 소비가 이뤄져야만 경제불황을 피할수 있는 현대소비사회에서는 한편으로 보면 현대인의 「공허한 자아」야말로 경제체제를 이끌어가는 최대의 원동력이다.그때문에 현대의 심리요법은 「공허한 자아」로 고통받는 이들 을 소비주의라는 경제구조를 흩뜨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치료해내는 책임을 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묘안은 불가능하다.현대의 수많은 심리요법은 이처럼 경제구조에 따른 여러가지 부정적인 현상을 정서고립.이기주의.마약중독.허무주의적 취향등의 정신질환으로 치부함으로써 탈정치화시킨다.
그런 부정적인 질환들이 실제로는 권력체제나 경제체제,인종이나남녀간의 성차이.계급등 억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단순히 정신질환으로 다스려지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인간의 문제를 지나치게 사회경제적 부산물로 단순화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反소비주의적인 메시지에는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저자는 끝으로 심리요법 전문가들에게 환자와의 윤리적 대화와 사회성을 강조하도록 충고하고 있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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