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파리지앵이 되고 싶다” 뉴요커의 5년 체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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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파리에서 달까지
애덤 고프닉 지음,
강주헌 옮김,
즐거운 상상,
368쪽, 1만2500원

“나는 여덟 살 때부터 파리에서 살고 싶었다.”

지은이가 한 말이다. 그는 10대 초반 가족과 함께 파리를 여행했고, 사춘기 시절엔 파리에 대해 아는 지식을 모두 동원해 여학생을 꼬실 정도로 파리에 대한 애착이 심했다.  어쨌든 이 남자, 성공했다. 뉴욕에 살면서 그 유명한 잡지 ‘뉴요커’의 칼럼니스트로 자리를 굳혔고, 결국 ‘파리지앵’이 되는 꿈을 실현했다. 영화제작자인 아내 마사, 그리고 갓 태어난 아들 루크와 함께 1995년부터 5년간 파리에 살았다. 이 책은 그가 파리의 한 가운데서 좌충우돌하며 느끼고 배우면서 본 파리에 대한 스케치다.

지은이가 파리로 간 것은 자신의 아이를 미국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섯 살만 되면 TV나 보고 게임 보이를 갖고 노는 미국의 환경이 싫었다. 공원과 정원이 있고, 회전목마가 돌고,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파리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단순한’ 미국에 비해 그가 겪은 파리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미국과 정반대로 오히려 정치에 초연한 듯한 태도를 경쟁적으로 과시하고, 파리에선 ‘학생운동’이란 단어가 미국의 ‘가족농’처럼 대단한 파워를 발휘한다. 미국에서는 “어젯밤 닉스팀 농구경기를 봤소”라는 질문으로 서먹한 분위기를 깰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유아원에서는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용납하지 않고, 배달원은 배달 시간을 자기 편할 대로 정 한다.

그는 여느 파리지앵처럼 작은 가게에서 장을 봐서 50~60가지의 요리법을 익히고, 뤽상부르 공원에서 아이를 회전목마를 태우며 파리 생활을 만끽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에서 자신이 ‘뼛속 깊이’ 미국인임을 실감한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들이 그립고, 친절한 판매원이 그리운….

저자는 낭만적이면서도 따뜻한 가족애를 지녔다. 예리한 관찰력에 깐깐한 성미, 독특한 재치와 유머감각까지 갖췄다. 글에 그러한 그가 다 보인다. 파리도 비슷하다. 매력이 한없이 넘치지만 함께 친해지기에는 노력이 필요한 사람 같다. 책을 덮을 무렵엔 저자가 부러워졌다. 어쨌거나 그는 꿈을 이뤘다. 원제 『Paris to the Moon』.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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