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체조로 시작 점호로 일과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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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8월18일,지금 나는 무척 힘들어.큰 소리로 울고 싶지만 울 힘조차 없어.이제는 살기도 귀찮아진다.』 『19일,경기(기술원)의 생활 정말 짜증난다.누가 이런곳을 만들었는지.친구의 목소리 만이라도 듣게 전화기가 있으면 좋을텐데.차라리 정신병원이나 갈수 있게 미쳐버렸으면….』 『20일,오빠,어제 2명이 안 잡히고 도망갔어.정말 다행이야.그런데 오후에 7명이 또 도망치다 잡혔어.그래서 무지 맞았대.나도 걸리더라도 도망갈거야.
』 필사의 탈출을 기도하려다 37명의 원생이 숨진 경기여자기술학원 1층 생활관에는 원생 金모(16)양의 일기장이 불길에 그을린채 金양의 고통스런 이곳 생활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10대 소녀들로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요즘의 신세대와는 달리이곳 원생 모두는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하고픈 말과 심정을담은 일기장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만큼 소녀들에게 이곳의 생활은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오전6시30분.부모의 자상한 목소리 대신 방문을 두들겨대는 사감선생님의 고함으로 시작되는 아침.
원생들은 이 아침을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고통의 시작으로 표현하고 있다.7시 국기게양,7시30분 국민체조,8시까지 청소및 세면,8시30분까지 식사완료,9시~11시50분 오전수업,오후1시~4시 오후수업,4시~6시 자유시간,6시30분 저녁식사,9시까지 자유시간,9시 점호및 취침.
빽빽이 짜여진 하루의 일과는 사방이 철창과 전자감응장치등으로둘러쳐 기숙사 보다 더욱 가혹한,보이지 않는 또 다른 창살이었다. 하루 두차례 자유시간이 주어지지만 주위엔 매점과 흔한 음료수 자판기조차 없는데다 공중전화도 없는,외부와는 엄격히 단절된 자유 아닌 자유였다.
외출과 외박이란 말은 원생들에겐 없는 단어다.
원생들의 유일한 오락인 TV시청은 1,2층에 1대씩밖에 설치가 안돼 폭1 남짓한 복도에 길게 쭈그리고 앉아 봐야만했다.
무더운 삼복더위에도 7~8명이 있는 조그만 방에는 선풍기 1대 뿐이고 세면장에는 샤워기 하나 달려있지 않았다.
방화 주동자로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풀려난 李모(15)양은 『더운 여름에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물통에 담아 끼얹져야 하는 실정인데다 물이 더러워 씻고 나면 얼굴에 부스럼같은 것이난다』고 말했다.원생들의 이곳 생활은 이같은 주 변환경외에 인간의 기본적인 衣.食과 생필품 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었다. 석달에 1개 지급되는 치약은 두달만 쓰면 동이 나고 속내의는 10개월동안 2장씩 지급되는 것이 고작으로(기술원측은 5장씩 지급한다고 함)몰래 감춰놓는다는 것이 원생들의 설명이다. 원생 李모(16)양은 『밥은 쪄서 한 것이라 맛이 없고 반찬도 같은 음식이 반복되는데다 한달에 두세번은 밥이 적어 늦게먹는 아이는 못 먹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嚴泰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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