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과거를 공개한 여성들의 소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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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린 시절이나 무명시절에 겪은 자신의 성적(性的)고난기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여성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지난해 한 유명 여류화가가 성폭행으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강제결혼과 前남편에게 당한 신체적 폭행을 소설로 발표해 베스트셀러가 됐는가 하면 얼마전 출간된 젊은 여성작가의 자전적 소설도 여성들 사이에 큰 화젯거리다.
그의 소설은 대학시절 선배로부터의 성폭행과 원치 않는 동거 등 꽃다운 청춘기 7년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던 쓰라린 과거를 돌이키고 있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 판결이 고법에서 뒤집어지던 날,한 여성지 8월호는 조순(趙淳) 서울시장의 부대변인으로 일했던 정미홍(鄭美鴻) 서울시 홍보담당관이 KBS아나운서 시절 상사로부터당했던 어처구니없는 성희롱을 폭로,눈길을 끌었다 .한 분야에서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유능한 여성들의 이같은 자기고백은 어떤 여성도 성적인 돌발사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또하나 이들의 공통점은 「그 일」을 당했을 당시 누구에게도 마음 터놓고 의논할 상대 없이 혼자 고통속을 헤맸었다는 사실이다. 대학 신입생때 선배에게 성폭행당한 여성작가는 『그때 내가갖고 있던 성지식은 여자라면 누구나 처음 몸을 허락한 남성에게묶여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뿐이었다』며 『누군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 준 사람만 있었어도 내 청춘의 7년 이 그렇듯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그런 면에서 서울대가 국내 대학으론 처음으로 성(性)문제 등 여학생들의 고충을 상담해 주는 「여학생문제 상담소」(가칭)를 설립키로 한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사실 성폭행이나 성희롱은▲누구에게나▲예기치 못한 시점에▲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교통사고와 흡사하다. 교통사고의 외상이 적절한 치료로 완치될 수 있듯이 성적 피해도 전문적인 대응과 따뜻한 상담만 있으면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다.
서울대의 「여학생문제 상담소」설립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도 여성들의 은밀한 고통이 사회적 차원에서 어루만져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개인적인 수치를 딛고 자신의 과거를 공개한 여성들의 진정한 희망사 항이기도 하리라는 생각이다.
李 德 揆〈생활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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