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계 ‘이’빠진 자리 누가 채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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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을 한나라당 정두언 당선자가 10일 자전거를 타고 홍제동 인왕시장을 돌며 지역주민에게 당선사례를 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한나라당 내 친이명박계(MB계)가 혼란에 빠졌다. 9일 총선에서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여의도 재입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진영의 한 축을 짊어졌던 두 중진의 동반 낙선으로 MB계는 구심점을 잃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관계인 친박근혜계(친박계) 당선자가 당내에서만 30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자 MB계 내에서는 위기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갑자기 닥친 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손쉬운 길은 이상득 국회 부의장을 중심으로 집결하는 것이다. 이 부의장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데다 당내 최다선(6선) 의원으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내에선 벌써 “결국 이 부의장 곁으로 MB계가 모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 부의장이 MB계를 전면에서 책임 지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게 문제다. 동생이 대통령인데 자신까지 여당 실세로 부각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이 부의장의 생각이다. 사실 MB계 내 적지 않은 친이재오계 당선자들도 이 부의장의 급부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수도권에 주로 몰려 있는 이들 당선자는 지난달 말 이 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촉구하는 ‘총선 후보 55인 연대’를 이끈 주역들이다. 당시 이들의 집단 행동 배경에는 대선 승리 이후 본격화한 이 부의장과 이재오 의원의 권력 투쟁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때 형성된 양측 간 긴장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재오파가 정두언 의원과 연대할 가능성도 여당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해 경선 때 ‘이명박의 복심’으로 불렸을 정도로 계파 내부에서는 영향력이 적잖다. 게다가 ‘55인 연대’에 참여해 이 부의장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따라서 정 의원과 이재오 의원의 측근들이 손잡고 직접 새로운 구심점 구축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부상하는 조기전대론=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선거 전부터 “내 역할은 총선 때까지”라고 자주 말했다. 총선이 끝나면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조기에 열어 당권을 이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10일에도 “6월 18대 국회 구성 직후(인 7월에) 전당대회를 한다고 법석을 떠는 게 적절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 대표의 한 측근은 “조기 전대론은 강 대표의 지론”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런 강 대표의 주장이 당내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당내 다수파 MB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제안이 즉각 받아들여지긴 힘들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재오 의원이 4선에 성공했다면 강 대표의 주장이 즉각 받아들여져 당 전체가 전당대회 국면으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대표주자였던 이재오 의원이 빠진 상태에서 MB계가 조기 전당대회를 열려고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당분간 ‘강재섭 과도체제’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한편 이 의원의 낙선으로 또 다른 당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혀온 정몽준 의원이 ‘이재오 대타’를 자처하고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이재오 “휴식”, 이방호 “사퇴”=이재오 의원은 이날 오전 한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간 쉬며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방호 사무총장도 이날 당직 사퇴의사를 밝힌 뒤 “당분간 쉬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의 낙선에 대해 한나라당 내에선 “정권 창출 이후 대선 마무리 작업에 매달려 지역구 관리를 잘 하지 못했다” “‘공천=당선’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는 등의 분석이 나왔다.

글=남궁욱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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