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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holic] 불광천, 새벽부터 밤중까지 하하 호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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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핀 길은 주민들의 휴식처다. 흐르는 물을 따라 달리는 아이들, 반팔 차림이 싱그럽다.

불광천은 서울 은평구의 ‘대표’ 산책로다. 불광동에서 시작된 물길은 역촌동·응암동·북가좌동·증산동 등을 지나 마포구 성산동까지 이어진다. 나들이 뒤에는 월드컵경기장 주변을 둘러볼 수도 있다. 봄 내음 완연한 주말, 한나절 가족 나들이 코스로 그만이다.

글= 설은영·최경애 객원기자 (skrn77@joins.com), 사진= 양영석 인턴기자

■북한산 조망의 으뜸‘해 담는 다리’

불광천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전거와 산책. 자전거를 타려면 지하철 6호선 응암역 4번 출구로 나와 진입하는 게 좋다. 바로 앞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산책을 즐기려면 새절역 쪽이 낫다. 1번 출구로 나오면 ‘꽃잔치’ 중인 불광천을 만날 수 있다. 부러 조경을 해놓은 팬지 같은 꽃도 있지만, 개불알꽃 같은 야생화도 널려 있다. 현재 덩굴성 식물로 하천을 단장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신사교를 지나 신응교에 다다르면 ‘서울 같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수십 개의 장기판, 바둑판이 놓여 있는 다리 아래선 동네 어르신들의 훈수 소리가 시끌벅적하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다리 밑 동네 사랑방’인 셈이다. 주말이면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불광천 사랑방’에선 금연이 원칙. 이철구(68) 할아버지는 “여기 오느라 그 좋아하던 담배까지 끊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서울 같지 않은 풍경’은 신응교를 지나 와산교까지 내내 이어진다. 자그마한 원추리 밭이 있고, 물 위를 떠다니는 오리떼가 눈에 띈다. 조금 더 지나면 붓꽃밭도 만날 수 있다. 소박하게나마 고향집에 돌아온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와산교에 이르면 플라타너스 거리가 펼쳐진다. 플라타너스 아래엔 노란 개나리꽃이 늘어서 있다. 하천 양단을 잇는 징검다리에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아이들에게 ‘밟는 재미’를 주기 위한 아이디어다.

증산2교를 통과하고 나면 불광천 산책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해 담는 다리’가 나타난다. 인기 비결은 역시 멋진 조망. 다리 위에 서면 북한산 쪽으로 응봉, 의상봉 등이 한눈에 보인다. 맑은 날에는 대남문까지도 볼 수 있다. 야경도 한몫한다. 해저물녘 산책을 나섰다면 석양에 물들었던 다리에 어둠이 내리고, 네온 불빛이 번져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해 담는 다리’에서 증산3교로 향하다 보면 다시 ‘서울 같지 않은’ 봄 풍경이다. 산책로 양편에 삼삼오오 모여 쑥을 뜯는 사람들 대부분은 동네 주민들이다. 증산교부터는 산책하기가 다소 불편해진다. 상암지구 난방 공급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공사현장만 지나면 다시 쾌적한 산책로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며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함께 진행한 덕에 오히려 이전 산책로보다 더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다. 서식하는 물고기·새도 많다.

약 9km 거리의 불광천 산책로는 느긋한 걸음으로 1시간30분~2시간이면 충분히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직접 하천 가꾸기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은평구청에서는 시민들이 실명으로 불광천의 꽃길과 가로수를 관리할 수 있는 ‘그린오너 제도’를 운영 중이다. 참여 주민에게는 각종 장비도 지원해 준다.

■해질녘이 더 좋은 ‘평화의 공원’

불광천 산책길에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월드컵경기장 ‘평화의 공원’이다. 불광천을 따라 1시간30분 남짓 걷다 보면 중암교를 지나 ‘한강에서 1.5km’라고 쓰인 이정표가 나타난다.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바로 월드컵경기장이다. 막바로 가려면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평화의 공원에서는 난지연못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를 추천할 만하다. 난지연못가에 마련된 유니세프광장은 특히 인라인 스케이터들이 즐겨 찾는 곳. 유니세프광장 맞은편에는 난지연못 생태습지가 있다. 나무데크가 깔린 생태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붕어·돌고기 등의 어류와 창포 같은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해질녘 노을 지는 풍경도 일품이다. 5월부터는 매주 토요일마다 ‘수변 작은 음악회’도 열릴 예정이다.

주말을 맞아 가족피크닉을 나왔다면 생태습지 옆 공원 안쪽 ‘희망의 숲’을 권할 만하다. 2000년 봄 시작된 ‘생명의 나무 1000만 그루 심기’ 운동 덕에 숲이 꽤 울창해졌다. 돗자리를 준비하지 않은 방문객들을 위해 40여 개의 멍석도 마련돼 있다. ‘희망의 숲’을 지나 350m쯤 더 걸어가면 ‘평화의 정원’이 나온다. 이곳에선 무엇보다 지면 높이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지면이 오르락내리락 들쑥날쑥하다. 높아지는가 싶으면 뚝 떨어지고, 좀 낮다 싶으면 이내 솟아오른다. 일종의 ‘대지 예술’이란다. 최근 마거리트와 백철쭉이 꽃망울을 터뜨려 한결 화사해 졌다.

‘평화의 정원’을 나와 난지연못의 여울 징검다리를 건너면 다시 처음 출발점인 유니세프광장이 나온다. 내친김에 조금 더 걷고 싶다면 하늘공원으로 가자. 유니세프광장 도착 직전 왼쪽 보행 육교를 건너면 된다. ‘평화의 공원’을 산책하듯 차근차근 둘러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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