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퀴즈가 좋다, 퀴즈 대한민국, 장학퀴즈, 퀴즈아카데미.
PMC 대표 송승환, 방송인 이택림, 부산지검 임무영 부장, 김명식 변호사, 가수 전영록, 전 SBS 앵커 한수진, LIG엔설팅 최승기 대표이사, 영화감독 이규형.
맞혔다면, 당신은 상식의 달인.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셔도 되겠다. 이상 8명은 국내 최장수 퀴즈 프로그램 ‘장학퀴즈’ 출연자들이다. 최승기 대표는 1973년 2월 18일 첫 방영에서 주장원을 했다. 이규형 감독은 주장원과 월장원을 제패하고 3기 기장원에 올랐다. 무협소설을 냈던 임무영 검사와 후일 ‘퀴즈 아카데미’ 7연승을 한 김명식 변호사도 ‘장학퀴즈’ 기장원 출신이다.
70년대에 ‘장학퀴즈’가 있었다면 80년대엔 ‘퀴즈 아카데미’가 있었다. 파스텔 색조의 셔츠에 니트 조끼를 덧입고 물 빠진 청바지로 폼을 낸 오빠들이 시사면 시사, 예술이면 예술, 나오는 문제마다 척척 맞혔다. ‘여름사냥’ ‘분열에서 융합으로’ ‘동 틀 무렵’ ‘달과 육백냥’ 등 팀 이름도 재치 그 자체였다. ‘퀴즈 아카데미’의 기출문제집이 출간됐을 땐 언론사 준비생들의 필독서로 읽혔다고 한다.
‘장학퀴즈’ 18기 기장원이자 ‘퀴즈 아카데미’ 7연승을 한 송원섭(41)씨는 “퀴즈 프로그램은 나간 사람이 또 나가게 마련이고, 정통 퀴즈쇼 우승자들은 학업 성적도 우수한 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퀴즈 프로그램 우승자를 되짚어 보면 다른 데 출연했던 사람이 꽤 많다. 또 항상 신문을 읽고 폭넓은 사고력을 갖춰서인지, 퀴즈쇼 이후에도 개별 분야에서 돋보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래서 Week&이 만나 봤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때 그 퀴즈왕’들을. 한때는 퀴즈 푸는 것을 즐겼고, 지금은 인생의 퍼즐을 즐거이 맞추고 있는 척척박사들. “아니, 이들도 퀴즈 프로에 출연했나” 싶은 유명 인사의 TV 데뷔담도 함께 소개한다. 공통점은 ‘퀴즈쇼 출연’이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는 사실. 영화 ‘퀴즈쇼’(로버트 레드퍼드 감독, 1995)는 “그렇게 많은 상금을 주는데, 인생의 의미 같은 걸 문제로 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지만, 인생의 의미를 맞히는데 그렇게 많은 상금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 자체를 도전이라 생각하는 한.
글=강혜란·이영희 기자
“팬레터 숱하게 받아봤죠”
사무관 배경택, 기자 배성민
보건복지가족부 사무관인 형 경택씨는 198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MBC ‘퀴즈 아카데미’ 출신이다. 서울대 신문학과 2학년이던 90년 10월, 고교 친구 권영준씨와 ‘청년의 얼굴’이란 팀으로 출전했다. “해외여행을 못 해봤던 터라 7승을 하면 유럽 여행 보내준다기에 나갔죠.” 두 명이 팀을 이뤄 참가하는 ‘퀴즈 아카데미’는 여덟 팀이 토너먼트를 거쳐 그 회 우승팀이 전 주 우승팀과 승패를 가리는 식이었다. 해외여행 자체가 드물던 시절, 14박15일의 유럽 여행은 매력적인 포상이었다. 승승장구한 ‘청년의 얼굴’은 연말 왕중왕전까지 휩쓸어 ‘일반인 스타’가 됐다. “여고생부터 대학생들까지 팬레터를 보냈으니까요. 실제로 만났느냐고요? 아내가 이 기사 볼지 모르니 노코멘트로 해둘게요.” 96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배씨는 대학 졸업과 함께 외교관 생활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청년의 얼굴’이 잊힐 즈음인 2004년 10월 KBS2 ‘퀴즈 대한민국’에 출전했다. 상금이 높은 만큼 문제가 어렵기로 유명한 이 프로그램에서 배씨는 최종 라운드를 거뜬히 통과, 당시로선 역대 최고 상금인 5172만원(절반은 이공계 육성에 기부)을 받았다.
“비법 같은 건 없어요. 별다른 준비 없이 나갔는데도 ‘퀴즈 영웅’에 오른 건, 평소에 신문을 많이 읽으며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인 듯해요.”
“퀴즈 프로에 자꾸 나간 건 상금의 유혹도 있지만,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벤트였기 때문이에요. ‘퀴즈가 좋다’ 땐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뭔가 기쁨을 드리고 싶었고요, ‘퀴즈 대한민국’ 땐 임신한 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고요.”(성민씨)
형제는 “퀴즈는 실력보다는 운”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알고 남은 모르는 게 나와야 이기잖아요. 일종의 로또죠. 그리고 퀴즈란 게 중독 같아요. 우린 둘 다 담배도 도박도 안 하는데, 퀴즈를 풀 때 짜릿한 기쁨은 그런 것 못지않죠. 게다가 해(害)도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강혜란 기자
사법연수원생 조아라 “다시 한번 도전해 볼까요”
하지만 어찌 행운만으로 퀴즈왕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당시 ‘골든벨 문제’였던 50번 문제는 “경기 12잡가(雜歌) 중 하나인 ‘유산가(遊山歌)’의 한 구절 ‘죽장망혜 단표자(竹杖芒鞋單瓢子)’에서 ‘망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였다. 정답은 ‘짚신’.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 나오지 않는 작품이지만 원래 문학을 좋아해 ‘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문학 100선’ 등을 읽어 뒀던 게 도움이 됐다. 지금도 ‘활자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신문이건 만화책이건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을 즐긴다.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린 퀴즈 프로그램을 볼 땐 ‘다시 한번 도전해 볼까’ 유혹도 느끼지만 “혹시나 초반부에 떨어져 골든벨의 명예를 더럽힐까봐” 자제하고 있다고.
‘행운의 소녀’답게 고려대 법학과를 다니던 중 사법고시에 합격, 현재 사법연수원 2년 차다. 하지만 아직도 ‘골든벨 퀴즈왕’이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닌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저를 보다 쉽게 기억해 주니 좋아요. 그런데 그때 사진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동일 인물 맞느냐?’ ‘용 됐다’라고 문자를 보낼 땐 괴로워요. 골든벨 울릴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쁘게 하고 나갔을 텐데. 하하.” 앞으로 경제법 분야를 더 열심히 공부해 공정거래나 지적재산권을 전문으로 다루는 법조인이 되는 게 꿈. “운이 좋아 골든벨도 울리고 고시도 일찍 붙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요. 법 공부하느라 못한 다양한 분야의 공부도 해야 하고, 좋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 폭넓은 경험도 쌓아야 하죠.” 참 ‘겸손한 퀴즈왕’이다.
이영희 기자
가수·펀드매니저 김광진 “음악문제 맞힌 덕에 장원 됐지요”
장학퀴즈 주장원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음악’ 덕분이었다. “마지막 문제가 클래식 음악 몇 곡을 틀어주고 공통으로 연상할 수 있는 숫자를 맞히는 것이었어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듣자마자 정답 ‘119’를 힘차게 외쳤죠.” 인성교육을 강조한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기타 등을 배웠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도 열심히 들었다. 사춘기 때 꿈은 ‘인기가수’.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가수의 꿈을 접지 않고 개교 100주년 기념 가요제에 나가 당당히 우승했다. 당시 대회에서 ‘동물원’ 멤버 김창기씨가 2등, 가수 안치환씨가 3등을 차지했었다는 사실은 가요계의 ‘전설’이다.
2002년 음반 ‘솔베이지의 노래’를 끝으로 한동안 음악활동을 접고 회사생활에만 열중했던 김광진씨는 최근 6년 만의 솔로앨범 ‘라스트 디케이드(LAST DECADE)’를 발표했다. 4월 20~21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오랜만에 작은 콘서트도 연다. “장학퀴즈 마지막 문제에 내가 좋아했던 음악이 나왔던 것도 그렇지만, 인생에는 어느 정도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나 봐요. 음악을 떠나 있으니 너무 괴로워 ‘노래가 내 운명’이라는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영희 기자
정치인 김두관 군수 “선거 때 퀴즈 2등 경력 썼어요”
남해종고 2학년 때였지요. 방학 중 서울 누님 댁에 놀러갔는데, 그게 첫 서울 나들이였어요. 서울에 간 김에 평소 애청하던 ‘장학퀴즈’를 보러 정동 문화방송 공개홀에 구경갔어요. 남해 촌놈이 태어나서 가장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방송국이란 게 정말 으리으리하더군요. 녹화 직전에 방청객 50여 명에게 시험 기회가 주어졌는데, 실력인지 행운인지 제가 뽑혀 즉석에서 참가하게 됐습니다. 제가 평소에 사회, 국사, 시사상식, 스포츠가 좀 강했어요. 신문·잡지 읽는 것도 좋아했고요. 퀴즈 대회 첫 출전이라 처음엔 얼어서 꼴찌 근방에 머물다가 막판에 200점을 몰아 따서 2등을 했어요. 기억나는 문제 중에 ‘금강전도’를 그린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을 맞힌 것과 가수·배우가 첫 무대에 오르는 것을 ‘데뷔’라고 답한 게 있네요. 상품으로 장학금과 참가 메달, 그리고 어머니 한복 옷감 한 벌을 받았습니다.
차인태 아나운서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지요. 2003년 제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있을 때 그분이 평안도지사에 임명됐어요. 임명장을 받으러 왔을 때 제가 문 앞에서 반기며 인사했더니, 웬일인가 하셨어요. “장학퀴즈 출연했었다” 하니 “아하!” 하시더군요. 돌아보면 ‘장학퀴즈’ 출연은 젊은 날 자신감을 갖게 하고 도전정신을 심어준 소중한 추억이랍니다.
강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