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정국 혼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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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세계 5위의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 정국이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소환투표를 둘러싼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15일 베네수엘라 대법원 선거분과위원회는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소환투표 청원서명의 유효 여부를 둘러싸고 "서명자의 신원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지난 2일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전격 뒤집어 대통령 퇴진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달 27일 시작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야당 당수를 포함해 사망자 9명과 부상자 108명이 발생했다.

◇극렬한 찬반 논란=이번 사태는 지난해 말 야권이 대통령에 대한 소환투표를 추진하며 불거졌다. 야권은 소환투표 청원에 필요한 유권자 수의 20%보다 많은 340만명분의 서명을 받아 지난해 1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 여러 차례의 연기 끝에 선관위는 지난 2일 "서명 중 180만건은 인정하되 87만명분은 진위 확인이 필요하다"며 반려했고, 이 결정은 격렬한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유엔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가 자국의 민주주의 후퇴에 항의해 사임했고, 야당인 민주행동당 당수가 4일 시위 도중 진압군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같은 혼란 속에 대법원 선거분과위원회는 15일 서명 당사자가 서명서 용지에 신원상황을 직접 작성하지 않은 87만명분의 서명은 무효라는 선관위의 결정과 반대로 "서명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야권은 선관위도 유효성을 인정한 180만명분의 서명에 87만명분을 더해 대통령 소환투표에 필요한 소환청원 서명수(240만명)를 넘는 서명을 확보한 셈이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소환투표를 실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헌법분과위원회에 의해 다시 뒤집어질 수 있는 데다 차베스 정부도 대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 향후 소환투표 청원서명 확인 작업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는 심화할 조짐이다.

◇부유층 대 빈곤층=남미에서 민주체제가 가장 안정됐던 베네수엘라는 빈곤층의 지지를 업고 1998년 당선된 차베스 대통령 취임 이후 정정불안을 겪어왔다. 차베스는 국회 심의 없이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입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 부유층의 토지를 몰수해 빈곤층에 나눠주는 등 극단적인 개혁작업을 시작했다.

기업과 상류층은 지나친 정부 주도의 경제 시스템과 토지 재분배에 즉각 반기를 들었다. 부패척결을 주장하던 차베스가 주요 국영기업 총수직에 자신의 측근들을 임명하고, 경제난이 가중되자 중산층도 차츰 등을 돌렸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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