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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광주 신창동 유적발굴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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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난 19일 광주시신창동에서 서기전 1세기후반께의 소택지 유적이 발굴돼 조사내용에 대한 설명회가 있었다.지금까지 고고학적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처음 대하는 많은 유물이 출토돼 세인을 놀라게 했다.수십년간 수많은 발굴현장 을 돌아다녔지만,3백평 남짓한 좁은 구역에 그렇게 중요한 유물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처음 보았다.아마도 이 유적 발굴을 담당한 당사자들도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신창동 소택지 발굴은 선사고고학사상 최대의 성과를 거둔 발굴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유적은 얕은 구릉과 구릉하부 주변의 충적지로 이뤄져 있는데 이곳은 주거공간(취락지),생산공간(토기.목기.공방 등),묘지공간(옹관묘.목관묘 등),그리고 농경공간(논.밭)등으로 분할구성돼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이번 구역은 이중 에서 목기공방일부와 그에 인접한 소택지였으며,소택지는 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유기물로 된 목기와 자연 유물의 상태가 양호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지금까지의 발굴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많은 인공의 목제유물,그리고 곡물.씨앗.어패류.모발.수골.인골 등의 유물들은 당시의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을 복원하는데 더 할 수 없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며,앞으로 출토물들의 정밀 조사 과정에서 더 많은 새로운 자료들이 검출될 것으로 기대된다.이제 선사와 역사 가 나누어지는 기점인 1세기께의 실상을파악하는데 보다 쉽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것이이번 발굴의 성과며 의의라 할 수 있다.
굳이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쓰지 않더라도 불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발화구,신발 제작을 위한 신발골,가옥 건축 부재로서의 문짝,쇠스랑.괭이.고무래 등의 농기구,그리고 일상생활 용구로서의 빗자루와 망태기 같은 유물은 앞으로 국내 학계 의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출토유물로 볼때 신창동 유적은 해방후 최대 발견의 하나라고 한 지난 88년 발굴된 경남의창군다호리 유적과 같은 시기며 그 문화 내용도 공통된 점이 많다.
이번 조사는 향후 한국 고고학계의 조사향방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기존의 눈에 띄는 지상 유적 중심의 발굴과분묘유적 발굴에서 벗어나 지상에서 감지되지 않는 지하에 매장된유적,그리고 저습지 유적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 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더불어 각종 개발사업에 따른 문화유적 조사가 지상유적에 대한 지표조사의 결과만으로 발굴시행 여부가 결정되는 현문화재행정체제에 새로운 대책이 시급히 강구돼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발굴은 유물을 끄집어내 는 작업만이 아니다.목제유물을 비롯한 각종 유물들의 보전처리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조속히이뤄져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의 뒷받침과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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