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뉴 서비스’신화에 도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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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의 IT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하드웨어에 디지털 기술을 잘 버무려 세계적 틈새시장을 개척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기술에 서비스를 접목한 ‘뉴 서비스’ 신화에 도전해야 한다. 우리 IT 기업들이 제조업으로부터 서비스 분야로의 대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 서비스’란 생산자에게는 기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위에 고객을 위한 새로운 감성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최근의 햅틱폰은 휴대전화의 기술적 기능과 함께 촉각(觸覺)이라는 감성적 가치를 서비스하고 있다. 앞으로 모든 디지털 가전기기가 인간의 오감(五感)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기술적 우수성 자체보다는 어떤 감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따라서 서비스가 제품 설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중요하게 된다.

결국 ‘뉴 서비스’는 평소 소비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감성적 만족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소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때 느끼는 감성적 가치가 제품 가격의 대부분을 결정하게 되며 온라인이든 모바일이든 상호 연결된 채널을 통해 서비스가 완성된다. 지금 우리는 이미 네트워크화된 서비스 시대에 진입해 있다. 지난해 전자상거래 규모는 전년 대비 25% 증가한 516조원을 기록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의 70% 수준에 육박했다.

그러나 우리가 ‘뉴 서비스’를 주도하면서 IT 신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스스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의 강점을 살려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신속하게 제품을 개발해 냈으며 ‘비빔밥’ 요리하듯 다양한 관련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된 성능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휴대전화, 반도체, 디스플레이드 등 소위 IT 하드웨어 제품들이 전체 수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였다. 중소 벤처기업들도 셋톱박스, 보안용 디지털 비디오 레코딩, 디지털 도어록 등 적지 않은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뉴 하드웨어(하드웨어+디지털 기술)’의 짜릿한 성공 경험을 뒤로 하고 ‘뉴 서비스(서비스+디지털 기술)’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물론 우리의 신속한 개발력은 계속 효과를 발휘할 것이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왜냐면 이제는 상상력이 경쟁우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반도체칩을 설계하더라도 성능보다는 서비스를 상상해 내야 한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스토리 있는 제품, 스토리 있는 기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 창조 역량에 대해서는 긍정적 신호가 적지 않다. 세계 온라인 게임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한류 콘텐트로 전 세계가 공감하는 상상력을 창조해 내기도 했다. 또한 유비쿼터스-헬스케어 분야에서도 세계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창조 역량은 우리 특유의 정(情)의 문화와 어우러져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의 장점 이면에는 커다란 약점도 내재해 있다. 예를 들면 제휴와 협조의 문화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제휴 집단 간 글로벌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네트워크 시대에 이러한 약점은 치명적일 수 있다. 정부 정책의 기조도 바뀌어야 한다. 가치 있는 서비스를 창조하기 위해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산업 간 경계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이제는 산업단위별 정책을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 중심으로 또는 사업군 중심으로 정책적 아이디어를 모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원활한 네트워크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표준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단말기와 서비스 간 자유로운 접속을 보장하는 표준들이 신속히 정립되어야 하며, 인터넷 불법 복제 방지, iPTV 방영, 모바일 통신망 개방 등 ‘뉴 서비스’와 관련된 시장을 창출하고 확대하기 위해 시급히 개선할 제도도 많다.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