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어릴 때부터 성 개념 갖게 딸 목욕은 엄마, 아들은 아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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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보다 해맑고 예쁜 어린이들. 하지만 최근 어린이 대상 성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근심이 가득하다. 실제 성범죄 피해 어린이의 정신적 후유증은 심각하고 오래간다. 인간의 뇌에 각인 된 성에 대한 본능적 수치심은 유아기 어린이에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체구가 작아 신체 손상이 큰 것도 문제다. 성폭행을 당한 뒤 항문 괄약근 파열과 과다 출혈로 응급실을 찾기도 하고, 변실금을 앓기도 한다. 어린이 대상 성범죄, 무엇이 문제이며 내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소년·소녀 보호와 교육이 우선

“철 없는 어린애를 어떻게….” 어린이 성범죄 소식에 경악하는 어른들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이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바로 물리적인 힘도 없고, 판단력도 부족한 어린이라는 점을 노린다. 안양 어린이 가해자도 “아픈 강아지를 돌봐 달라”는 말로 유혹했다.

현실적으로 범죄자들에 대해서 지인들조차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해 봤다”라는 말을 반복하듯 어린이가 말투나 인상을 통해 범인의 흑심을 알긴 힘들다. 따라서 성범죄 예방엔 어린이를 보호자 없이 방치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선진국처럼 등·하교 때는 물론, 집에서도 어린이를 혼자 두지 말 것. 범죄 상황이 의심될 땐 ‘소리를 질러라’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마라’는 식의 예방 교육을 반복해야 한다.

또 어린이 성범죄자의 절반은 술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따라서 술 취한 어른은 일단 멀리해야 할 대상임을 일러주자.

보호와 교육은 전체 어린이가 대상이다. 성범죄 가해자는 성인 남성뿐 아니라, 성인 여성도 있다. 동성의 어른으로부터 피해를 입는 경우가 5% 정도다.

술·마약 즐기는 사람 욕망 단절 힘들어

성범죄는 고치기 쉽지 않다. 특히 어린이 대상 성범죄(소아 기호증, 롤리타 증후군)는 더더욱 힘들다. 대부분 성적으로 무능한 가해자가 무기력한 어린 피해자를 지배·통제함으로써 자신의 무능을 극복해 보려는 병적인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병적인 성적 환상은 해결될 때까지 강렬한 욕망으로 남아 지속적으로 가해자에게 고통을 준다. 성범죄 재발률이 높은 이유다.

특히 성범죄 시작 연령이 어리거나 횟수가 잦을 때,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없는 경우, 술이나 마약을 즐기는 사람은 병적인 성욕과 단절하기 힘들다. 그나마 성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에 정상적인 남녀 간 성행위 경험이 있었고, 또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는 굳은 결심과 치료 욕구가 강렬한 경우엔 개선될 여지가 있다.

성범죄 피해를 당했을 땐

피해 어린이는 모든 어른에 대한 불신감에 가득차 있다. 또 작은 소리에 깜짝 놀라거나 못 먹고, 못 자며 악몽에 시달리는 등 불안증을 보인다. 외출도 무서워 하며, 잠시도 혼자 있으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보호자는 늘 옆에 있으면서 아이를 지속적으로 안심시켜 줘야 한다.이런 방법으로 좋아지지 않으면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청하자.

아이가 피해 상황을 이야기할 땐 아무리 화가 나도 “왜 따라갔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물론 꼬치꼬치 물어서도 안 된다. 대신 일단은 자연스레 아이가 하는 말을 다 들어줘야 한다.

유아기부터 성 기본개념 심어줘야

개방화 시대라지만 성은 은밀한 프라이버시 영역이며, 존중하고 또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유아기부터 ‘내 몸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예컨대 걸음마 어린이라도 목욕 후 나체로 돌아다닐 땐 “너의 몸은 소중하니 벗은 채 아무나 보게 하면 안된다”고 반복해서 설명하고, 부모 역시 아이 앞에서 옷 벗은 채 다니지 말아야 한다.

아이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목욕은 동성 부모가 시키고, 이성 부모는 옷을 입은 채 씻기는 게 좋다. 또 아무리 어려도 아이에게 부모의 성행위를 보게 해선 안 된다. 그래야 아이가 성적인 피해 상황을 인식하기도 쉽고, 성적 갈등이나 성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가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도움말=삼성서울병원 홍성도, 한양대병원 안동현, 아산병원 유한익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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