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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공간을 디자인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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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18면

지난해 8월 네덜란드 베스트란트에서 열린 꽃 보트 퍼레이드의 한 장면. 노란 꽃으로 장식한 보트가 3일간 운하를 돌면서 축제분위기를 돋우었다. 한국플로리스트협회 제공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주목 받는 꽃 디자인
지난해 8월 말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 결혼식장에 100m 길이의 꽃길이 열렸다. 주차장에서 홀 안까지 160개의 꽃 스탠드가 놓였다. 스탠드와 스탠드는 꽃잎과 나뭇잎으로 이어졌다. 제주도에서 공수된 수국과 장미, 푸른 사과, 청포도로 만든 이 꽃길의 가격은 4000만원. 플로리스트 김진홍(43)씨의 작품이었다. 플로리스트는 장식 등을 통해 꽃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아티스트를 말한다. 김씨는 그해 12월에 1500만원을 받고 강원도의 한 골프장 콘도 로비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활짝 피는 ‘플라워 데코’ 산업

김씨가 꽃을 활용한 공간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작은 규모의 작업도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1억원이 넘는 공동정원 조성 작업도 한 적이 있다. 그는 “꽃꽂이처럼 단순한 꽃 장식물을 파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아이디어를 팔기 때문에 비싸게 받아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플로리스트 김진홍씨가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강원도의 한 골프장 콘도 로비에 설치된 이 작품의 가격은 1500만원.

김씨에게서 보듯 꽃을 이용한 장식 산업, 즉 ‘플라워 데코(Flower Decoration)’ 산업이 신성장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플라워 데코 산업의 규모가 국내 꽃 소비액 3600억원(2006년 기준)의 세 배 이상에 달할 것으로 본다. 1조원 안팎이 되는 셈이다.

플라워 데코 산업이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대표적인 분야는 공간 인테리어다. 예전에는 꽃 장식 의뢰가 들어오면 꽃병, 꽃바구니 장식물을 만들어 건네주기만 했다면 지금은 플로리스트가 직접 공간을 디자인한다. 레스토랑이나 카페, 기업 사무실 등을 꾸며 달라는 의뢰가 많다. 고객 취향에 따라 꽃과 화기(花器), 나무줄기나 아크릴 등 각종 소재를 활용해 테이블 등을 장식하고 곳곳에 꽃으로 만든 작품을 설치한다. 설치 후에는 매주 방문해 사후 관리를 해주고 관리비를 따로 받는다. 보통 수백만원 규모로 이뤄지고 사후 관리비는 한 달에 10여 만원이다.플로리스트 박준영(30·여)씨는 지난해 말 1000만원 규모의 사무실 인테리어 작업을 했다. 서울 광화문의 한 중견 기업에서 임원실과 회의실이 있는 한 개 층을 꾸며 달라고 의뢰해온 것이다. 6개 사무실과 복도를 어떻게 꾸밀지 시안을 제출하고 고객과 의견을 조율해 샘플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 그 후 4명의 플로리스트가 나흘 동안 작업을 했다.

이경옥 한국플로리스트협회 이사장이 수선화·호접란·카네이션 등 15종류의 꽃 3000송이로 만든 드레스. 7명의 플로리스트가 달라붙어 10시간 동안 만든 이 드레스의 가격은 150만원.

파티 기획, 생활소품, 패션 등 다양
결혼식이나 돌잔치, 신제품 론칭 쇼 등 파티를 기획해 주는 플로리스트 역시 늘고 있다. 연회장 전체를 꽃으로 장식하고, 거기에 맞게 테이블 등을 배치하고 음식까지 골라 준다. 분위기에 맞는 의상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제 플로리스트가 파티 플래너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가격은 수백만원에서부터 수천만원까지 규모에 따라 다양하다.

10년 넘게 호텔에서 파티를 기획해온 플로리스트 김혜영(45·여)씨는 2005년 호텔을 그만두고, 파티 기획 업체를 꾸렸다. 김씨는 다음달 있을 결혼식 준비로 한창 바쁘다. 고객이 특별히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회사 홍보 이벤트를 겸한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의뢰해 왔다.

꽃이 가구 등 다양한 생활소품과 결합하기도 한다. 월간 ‘카사리빙’은 매년 11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홈 테이블 데코 페어’라는 생활소품 전시회를 연다. 이 전시회에서 주를 이루는 생활소품은 꽃과 식물을 다양한 소재의 화기에 담아 만든 것이다. 이들 소품은 현장에서 직접 판매된다. 58개 업체가 참가한 지난해 전시회는 2만3000여 명이 관람했다. 카사리빙 측은 올해 전시회에 3만 명 이상이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꽃은 패션계에서도 고수익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핸드백 등을 만드는 명품 브랜드 ‘루이까또즈’는 5년 전 프랑스의 유명 플로리스트 다니엘 피숑과 함께 꽃 전문 매장 ‘플레르 드 루이까또즈’를 선보였다. 국내에도 매장을 열었다. 로고가 새겨진 꽃 포장지·리본·종이가방 등을 사용하고, 꽃도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수입 꽃을 많이 쓴다. 이 매장의 강홍림 실장은 “핸드백과 함께 들었을 때 패션을 완성할 수 있도록 꽃다발을 만들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플라워 데코 산업이 급성장하자 플로리스트 양성 교육도 활기를 띠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독일 등 해외 꽃 교육기관과 제휴한 사설 아카데미가 생겨나는가 하면 2000년대 들어선 대학에도 플로리스트 학과가 속속 생겼다. 대구 가톨릭대 등 전국 10여 개 대학에서 플로리스트 학과를 운영 중이다. 평생교육원이나 사회교육원에 플로리스트 교육 과정을 개설한 대학도 많다.

이렇게 새로운 꽃 장식 기법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꽃 장식 기능대회가 주목받고 있다. 전국기능경기대회·화훼장식기능대회 등에서 수상한 꽃 장식은 업계 전체에 유행이 되곤 한다. 이경옥 한국플로리스트협회 이사장은 “유학을 다녀온 플로리스트들이 각종 기능대회를 통해 실험적인 기법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이것이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의 플라워 데코 산업
해외에서 플라워 데코 산업은 10년 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해 이제 정착기에 들어섰다. 국가별로 ‘전문 분야’가 있을 정도다.
플라워 데코 산업의 전통적 강호는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은 실내 인테리어 분야에서 강하다. 독일 플라워 데코 산업의 트렌드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국제원예박람회에서도 인테리어 작품이 주로 선보인다. 꽃보다 나무줄기나 뿌리 등 다양한 식물 소재를 많이 써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프랑스에서도 대규모 박람회가 열린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이 박람회의 이름은 ‘메종 에 오브제’. 최근 이 대회에서는 보다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꽃 인테리어 작품이 인기다. 특히 동양문화가 접목된 오리엔탈, 차이나 스타일의 작품이 적잖게 출품되고 있다.

유럽에서 소비되는 전체 꽃의 3분의 2가 경매되는 전통적 꽃 강국 네덜란드는 실내 인테리어보다 실외 조경 산업이 발달했다. 식물이 많이 사용되는 조경의 특성상 독일처럼 자연에 가까운 느낌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특히 4월에는 꽃 차 퍼레이드가, 8월에는 꽃 보트 퍼레이드가 열리는 등 꽃 축제도 활성화돼 있다.

왕실이 건재해 파티 문화가 발달한 영국은 파티 기획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결혼식 등 각종 파티를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플로리스트 제인 패커나 폴라 프라이크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가지고 해외 각국으로 진출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도 이들이 파티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호텔이 있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미국은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대형 무대 장식 등 상업성이 높은 플라워 데코 산업이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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