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자의 인간 견문록]다윈의 해, 2009년을 준비하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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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39면

2009년은 내게 아주 특별한 해다.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에 태어났다. 흥미롭게도 같은 날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태어났다. 그날은 인류 역사에서 참으로 대단한 날이었다.

현대 진화생물학의 기본 원리인 자연선택론을 최초로 이 세상에 소개한 책인 '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 22일에 출간되었다. 초판으로 1250부를 찍었는데 첫날 거의 전부 팔려 곧바로 재판을 찍었다는 전설적인 책이다. 출간되자마자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 동부 여러 도시에 치열한 토론의 불꽃을 피운 책이기도 하다. '황무지'의 저자 T S 엘리엇도 늦은 밤 토론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로부터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컸다고 한다. '종의 기원'은 내 학문의 출발점이요 종착역이다.

학문의 역사에서 다윈의 자연선택론만큼 혹독한 시련을 겪은 이론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네 삶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오해가 이해를 앞지르고 말았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마자 사람들은 다윈이 동물원 철책 안에 앉아 있는 원숭이가 우리 인류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줄로 오해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때나 지금이나 절대로, 이를테면 침팬지가 진화하여 우리 인류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침팬지와 인간이 그 옛날 하나의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려 나와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할 뿐이다.

현대생물학은 DNA의 변화 속도를 거꾸로 계산하여 침팬지와 인간이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600만 년 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구의 역사 46억 년을 12시간으로 놓고 보면 11시59분을 훌쩍 넘긴 때였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뒤인 15만 내지 25만 년 전의 일이고 보면 우리 인간은 실로 순간에 ‘창조’된 동물이다.

인간과 원숭이가 그 옛날 공동조상을 지녔다는 사실만큼 우리를 철저히 겸허하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인간을 모든 다른 생물체로부터 분리시키는 이른바 이원론적 인본주의의 허구와 오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준 사람이 바로 다윈이다. 21세기 벽두 미국에서는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1000명을 선정하여 만든 '1천년, 1천인'이란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다윈은 갈릴레오와 뉴턴에 이어 과학자로는 셋째이자 전체 7위에 선정되었다. 그의 진화론이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다양한 학문 영역들은 물론 현대인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이 인정된 것이다. 그래서 과학사학자들은 이를 ‘다윈혁명’이라 부른다.

지금 서양에서는 2009년 다윈의 해를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기획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나도 지난해부터 우리 시대 최고의 젊은 진화생물학자들과 함께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동물과 인간의 감정 표현' 등 다윈의 대표 저서 세 권을 새롭게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개인적으로 또한 다윈의 생애와 이론에 관한 책을 따로 저술하고 있으며 세 편의 TV 다큐멘터리도 준비하고 있다. BBC 자연다큐멘터리의 호스트 데이비드 애텐버로의 흉내를 내며 다윈의 생가도 방문하고 그 유명한 갈라파고스 제도도 둘러보게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05년 11월 19일에 문을 연 뉴욕자연사박물관의 다윈특별전을 우리나라에 유치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국제스포츠대회를 유치하면 온 국민이 함께 환호해주건만 조용히 혼자 해내서 그런지 아직 박수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다윈은 그야말로 영국의 자존심일진대 얼마나 잘 만들었으면 런던자연사박물관이 미국이 만든 전시를 그대로 사들여 2009년 다윈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기로 했겠는가? 나는 거의 1년 가까이 끈질기게 매달려 이 전시를 2009년 6월에서 9월까지 우리나라에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21세기를 흔히 ‘감성과학의 세기’라고 한다. 감성과학이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접점에서 피어난다. 그 접점에 서 있는 학문이 생물학이며 우리는 또다시 다윈의 화려한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2009년 우리 모두 다윈에 한번 푹 “빠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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