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1만8000가구 ‘공급의 힘’ 송파구 아파트 값 끌어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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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삼성공인 중개업소. 재건축 공사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인근 아파트의 분양권 매물이 적지 않게 쌓여 있다. 이문형 사장은 “올해 입주할 물량이 많아 매물이 늘면서 현 시세보다 2000만~3000만원 싼 급매물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중개업소를 찾은 이모(42·여)씨는 “자녀 교육을 생각해 강남구로 이사하려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주변 환경도 괜찮은 잠실에서 집을 구하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매수자들의 관심이 잠실 재건축 단지에 집중되면서 주변의 기존 단지도 약세”라고 덧붙였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 7~9월 서울 잠실 주공 1·2단지, 시영 재건축 단지에 무려 1만8105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송파구 기존 아파트(7만8524가구)의 23%에 달하고, 2000년 이후 강남권 연간 평균 입주량(8500여 가구)의 두 배가 넘는 물량이다.

이 여파로 송파구 아파트값은 올 들어 3월까지 0.3% 하락했다. 시장이 위축되자 분양권을 입주 전에 처분하려는 조합원도 늘고 있다. 잠실동 학사공인 이상우 사장은 “투자용으로 사놓았던 분양권 매물이 많이 나오면서 시세가 올 들어 5000만원가량 떨어졌다”고 말했다.

잠실 입주 물량은 송파구뿐 아니라 강남·서초구의 주택 수요를 흡수하면서 강남권 전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수자들이 가격이 싼 잠실로 발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파트 109㎡형의 경우 강남구에선 11억~14억원이지만 잠실은 8억~9억원 선이다.

서초구 잠원동 강철수 공인중개사는 “올 들어 강남·서초구 아파트값이 보합세를 보이는 데 잠실 입주가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원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세금 등 수요를 억제하기보다 국민이 원하는 곳에 충분한 물량을 공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잠실 물량 말고도 뉴타운과 신도시 개발 등이 활발한 송파구에선 공급이 계속 이어진다. 송파신도시와 거여·마천 뉴타운에서 내년 하반기 이후 5만 가구가 넘게 나오고, 6600가구의 가락시영이 2012년께 8000여 가구로 재건축된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송파구에 공급되는 물량이 워낙 많아 강남권 전체의 가격 안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남·서초구에 입주 물량이 적어 송파구 물량만으로는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강남·서초구는 내년 7월 완공 예정인 반포주공 2단지 재건축 2400여 가구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입주 계획이 없다. 재건축이 중단돼 있기 때문이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박사는 “해당 지역이 아닌 주변에 공급해서는 일부 수요의 분산효과밖에 없다”며 “강남·서초구는 공급 부족으로 가격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김경환(경제학) 교수는 “잠실 재건축 사례에서 드러났듯 각종 규제에 발목 잡혀 있는 재건축을 활성화해 공급을 늘리는 게 가장 확실한 부동산 안정책”이라고 말했다.

안장원·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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