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느끼며>三豊참사속에 핀 이웃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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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무너져내린 콘크리트 더미에 갇힌지 무려 11일과 13일만에 최명석군과 유지환양 두 젊은이가 살아나왔다.
온 국민은 이 젊은이들의 「인간승리」를 기뻐했다.
죽음을 넘나들던 이들의 생환소식은 삼풍백화점 붕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끔찍한 사실을 일순간이나마 잊게 했는지 몰라도 사고 그 자체의 참상은 여전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하필 왜 오후6시였을까.
오후 6시면 백화점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이나 식품코너에서 떡이며 야채.과일등 그날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세일이 진행되는시간이고,이 때문에 주부들이 하루중 가장 붐비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일 그랬듯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6월29일 그 시간도 우리 아파트 주부들은 냉장고 문을 열고 서서 「슈퍼에 갔다올까,아니면 그냥 적당히 하루저녁을 지낼까」하고 망설였을테고 결국 가는 쪽으로 결정한 주부들의 상당수가 변을 당한 셈이 다.
바로 이 점,우리중 누구든 그날 그 장소에 있을 수 있었고 그래서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그 점 때문에 이번 참사를 집앞에서 지켜봤던 주변아파트의 많은 주부들은 불안과 집단우울증같은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엄마 식빵사러 삼풍에 간다.PM 5:35」라고 씌어진 메모만 현관에 덩그라니 붙여둔 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가서로 부둥켜안고 울어버린 아래층 가족들.
식구 저녁을 준비하다 양파 몇개 사러 슈퍼에 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세상 사람이 된 상진이 엄마.
잠시 슈퍼에 들렀다 변을 당한 그 사람들이 마치 내가 당할 사고를 대신 떠안은 것처럼 생각도 되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될 뻔했다는 생각은 부녀회라는 작은 조직을 통한 자원봉사활동을더욱 적극적으로 펴는 계기가 됐다.
사실 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부녀회는 유명무실한 조직이었다.
육중한 철문과 삭막한 콘크리트벽을 사이에 두고 아파트 주민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떤 이웃인지 아무 관심이 없었다.오직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팽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대참사는 그동안 이웃을 잃고 살아가던 우리들에게소중한 이웃사촌을 얻게 해준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실을 통해 흘러나오는 구조대의 「식품요청」방송을 듣고 수박.얼음.참기름등을 손에 들고 한걸음에 서둘러 나온 우리 이웃들.
하루 세번씩 「대기조」를 편성,일사불란하게 식사제공과 설거지,그리고 구조대원들의 졸음을 쫓기 위한 커피를 끓이면서 우리는큰 참사속에서 꽃피는 이웃간의 아름다운 희생과 봉사정신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주부들의 바쁜 손길을 지켜보던 한 구조대원의 『이런 일을 해보시는게 처음이시죠?』라는 말이 묘하게 가슴을 때린다.
희생자의 반수 이상이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며 폐점시간 무렵이면 퉁퉁 부은 다리를 만져야 했던 백화점의 남녀 직원들인데도인근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외제차나 타고 다니면서 으스대던여자들 잘 됐다』는 일부의 조소엔 차마 할 말 을 잊는다.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 가운데 일부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를 함께 싸잡아 매도하는 일부의 그릇된 편견과 선입관은 억울하게 희생당한,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시멘트더미에 갇혀있는 기준 엄마등 내 이웃의 알뜰하고 건전했던 삶을 기억해 볼 때 어처구니없는 비난이 아닐 수 없 다.다시는 이런 대형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삼풍백화점 자리에 교육회관이나 위령탑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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