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선관委의 어쭙잖은 사생활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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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삼풍백화점 관계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충우(李忠雨)前서초구청장이 지난번 구청장 선거때 등록한 재산이 1천5백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검찰수사관계자로부터 흘러나와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구청장까지 지낸 李씨 재산이 1천 5백만원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기자는 사실확인에 나섰다.
수사관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李씨는 뇌물수수에 이어 또 한번 부도덕한 사람이 될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그같은 말을 흘린 수사관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다.
그러나 기자는 사실확인과정에서 선관위의 보신(保身)주의때문에12일오후2시10분부터 오후5시10분까지 무려 3시간을 허비해야 했다.중앙선관위와 서초갑선관위에 수십차례에 걸쳐 전화로 승강이를 하고 직접 찾아가야 했다.서초갑선관위 사 무국장과 과장이 「재산등록업무에 종사한 자는 등록된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된다」는 공직자윤리법14조를 들먹이며 李씨의 등록재산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입후보자는 각 선관위에 자신의 재산을 등록하고 선관위는 이를 공개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는데 알려주지 않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안갔다.서초갑선관위는 이에대해 『이미 선거가 끝났으므로 특정후보자의 재산을 공개할수 없다』며 사생활보호를 이유로 막무가내였다. 그러나 서초갑선관위 관계자가 주장하는 공직자윤리법은 일반공직자들의 재산에만 관계되는 사안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고 선거후보자들의 재산등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지방선거후보자들의 등록재산은 공개하지 말라는 규정도 없고 하라 는 규정도없으며 이미 공고된 사항이기 때문에 알려줘도 상관이 없다』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이를 말해준다.
서초갑선관위는 중앙선관위의 해석을 알려줘도 『중앙선관위에 직접 물어보고 내일 확인해주겠다』며 초지일관했다.그러나 기자의 항의에 중앙선관위가 서초갑선관위에 공개지시를 내리자 서초갑선관위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李씨의 재산을 가르 쳐 줬다.李씨의 재산은 1천5백만원이 아닌 7억5천4백여만원이었다.서초갑선관위의 어쭙잖은 사생활보호(?)가 李씨를 두번죽일뻔 했다는 것을 그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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