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뱅크案 역차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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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지난 10일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한 정부의 '배드뱅크(Bad Bank)' 설립 방안이 발표되자 각 은행 창구에는 그동안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힘겹게 빚을 갚아온 사람들의 문의 및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배드뱅크가 신용불량자의 빚을 최장 8년간 분할상환할 수 있게 해주고 금리도 6%로 낮춰주겠다고 하자 사채까지 끌어다 빚을 갚아온 사람들이 신용불량자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어렵게 빚을 갚아온 사람보다 신용불량자에게 더 혜택을 주면 신용불량자를 더 많이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역차별 논란=정부의 신용불량자 구제 대책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다. 이 때문에 그 동안 은행 대환대출(연체액을 대출로 바꿔주는 것)이나 사채를 끌어다 연체액을 갚아온 사람은 신용불량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됐다.

은행 대환대출은 상환기간이 길어야 3~4년이고 금리도 연 15% 안팎으로 높아 배드뱅크나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구제 프로그램보다 조건이 훨씬 나쁘다. 서울에 사는 金모(32)씨는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연 12~16%의 고금리를 물고 은행에서 대환대출을 받아 힘겹게 대출금을 갚아왔는데 이번 대책을 보고 맥이 풀렸다"며 "빚을 갚으려고 애를 쓴 사람에게도 금리는 낮춰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불량자가 아닌 사람에게까지 이자를 깎아주면 도덕적 해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가계대출 부실이 급증할 것"이라며 "신용불량자가 아닌 사람은 대환대출 이외에 다른 구제책이 없다"고 설명했다.

◇배드뱅크 구제 대상=5000만원 미만을 6개월 이상 연체한 다중 신용불량자만 해당이 된다. 다만 연체기간을 어느 시점부터 소급해 적용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예컨대 배드뱅크가 오는 6월 출범해 이때를 기준으로 연체기간을 판단하면 지난해 말부터 연체한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 반면 재정경제부가 신용불량자 대책을 발표한 3월 10일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해 9월 10일 이전부터 연체한 신불자가 대상이 된다.

재경부는 도덕적 해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경우든 앞으로 새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람은 이번 구제 대책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신용회복지원위원회나 산업은행.LG증권의 신용회복 프로그램은 새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람도 신청할 수 있다.

정경민.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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