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안제시하는 野黨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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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27 지자체 선거에서 집권 민자당의 총체적 패배와 민주당.자민련등 야당의 비약적 진출은 향후 정국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이었다.거기에 연이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미증유의 참사는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위신을 급격히 추락시켜 이 제 한국은 행정과 정치에 있어 지도력의 공백상태를 맞이하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까지 낳게 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근일 보도에 의하면 김대중(金大中)씨와그가 이끄는 동교동계가 제1야당 민주당을 이탈해 신당창당으로 방향을 굳혔으며,아울러 김대중씨의 공식적 정계복귀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아는 바와 같이 6.27 지자체 선거는 경남.북,부산과경기.인천을 제외한 전 광역자치단체를 야당이 장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민주당은 수도 서울에서 시장.구청장,그리고 의회의 절대다수를 장악하는 의미심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서울에서의 승리는 6.27 지자체 선거의 결과를 지역주의정치의 폐해로만 설명하려는 청와대와 민자당의 설명방식에 대한 수정을 불가피하게 했다.
또한 이 서울에서의 승리는 야당에 의한 차기선거에서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건국이래 평화적 정권교체의사례가 전무했던 한국에서 이는 한국민주주의의 장래에 대한 매우고무적인 징표다.
이러한 시점에서 신당창당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는 세심히 검토돼야 할 것이다.우선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전폭적 승리를 안겨준 유권자의 지지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어찌보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태도는 무척 실망 스럽다.
「충청도 핫바지론」같은 원색적인 지역주의 언어를 선거도구로 사용했으며 지난 세월의 정치행적이 민주화나 민주주의와 그리 상관이 없는 자민련 같은 정치세력에 대한 충청.강원지역에서의 대폭 지원이 그 예다.지역의 양심적 시민단체가 비판 한 민주당 공천자가 무난히 당선된 전주도 다른 예가 될 수 있다.
지역주의 정치구도아래선 지역에서 비판받고 과거 행적이 얼룩졌다 하더라도 충청인의 자존심,대구인의 자존심,또 어디의 자존심을 들고 나오면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 지방자치단체를 장악한다고한다면,그리고 향후 지자체가 각각 「지역의 자존 심」을 살리는정책을 추구한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를 걱정하는 것은 단지 기우에 그칠 것인가.
여기에서 민주당.자민련을 막론하고 야당은 유권자의 지원을 지역주의 언어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이나 金정권의 개혁에 대한 총체적 부정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유권자는 지금 그대로의 야당의 모습을 지지한 것은 아닐 것이다.많은 경우 에서 이는 대안(代案)부재 혹은 차선(次善).차차선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유권자는 실망스럽다기 보다는 불행하다.
희망을 주는 정치,즉 국민에게 대안을 제시해주는 정치가 되기위해서는 미래의 대안으로서의 야당의 존재와 위상이 극히 중요한데 이점에서 민주당의 장래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민주당이 당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건,분당(分黨)으로 문제를 해결하건 그것은 일단 당내 과제에 속한다.
다만 어떤 방식이건 그것이 지역주의와 전근대적 당 구조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갈 때에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희망이 될 수있을 것이다.그러하지 못할 때에 많은 유권자는 차기 선거에서 또다시 대안이 없는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며, 이 때에 한국정치는 아직 그 모습을 알 수 없는 기괴한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야당은 과거와 같이 존립 자체를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 더이상 아니며,이제 한국정치의 책임있는 한 주체로서 행동해야 한다. 〈계명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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