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모’ 겪어도 회원국 되고 싶은 동유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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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10면

옛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난 중부ㆍ동부 유럽 국가들에 나토나 유럽연합 회원국이라는 지위는 선망의 대상이다. 가입에 사활을 건 나라가 많다.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마음껏 펼쳐본다는 의미가 담겼다.

아일랜드ㆍ스웨덴ㆍ핀란드ㆍ오스트리아ㆍ스위스 등 선진국은 나토 가입에 관심이 없다. 우선 나토에 가입하면 국가 주권에 대한 제약이 따른다고 본다. 가입을 희망하는 나라들에 주권은 ‘사치’다.

가입 신청국은 신청 단계부터 상당한 ‘수모’를 겪는다. 완벽한 자격을 갖추기 전에는 회원국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자격이 미달한 만큼 일단 ‘멤버십 행동 계획(Membership Action Plan)’이 시작된다. 이 계획은 1999년에 도입됐다. 나토는 5개 영역에서 가입 신청국의 자격을 심사한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의지와 실천, 법치주의 준수 여부, 인권, 군사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따진다.

나토가 비대화되면서 ‘확장 피로 현상(enlargement fatigue)’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문제가 될 그루지야ㆍ우크라이나 등 러시아로부터 완전 독립하려는 나라들의 결심을 외면할 수 없는 게 나토의 내부 사정이다. 게다가 임기 중 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기여를 정치적 유산을 남기고 싶어 하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 강력하다. 부시 대통령은 그루지야ㆍ우크라이나 관련 협조를 얻기 위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세 번이나 전화했다.

러시아의 반대가 문제지만 미국은 러시아가 푸틴에서 메드베데프로 정권이 교체되는 전환기의 틈새를 적극 활용하려는 태세다. 반면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회원국들은 5월 7일 메드베데프의 러시아 대통령 취임 전후를 계속 악화돼 온 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토가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은 94년이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확장 여부에 대해 심각한 내부 토론이 계속됐다. 러시아가 나토의 동진을 냉전의 계속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신사협정을 제의했다. 발트해 공화국들은 나토에 가입시키지 말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물론 클린턴은 제의를 묵살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미국이 일방주의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소련의 서진(西進)을 막은 나토 체제를 유지한 것은 나토 창설 후 20년간 25억 달러 이상을 원조한 미국이다. 유럽 전체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기까지 미국은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반발과 그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다른 회원국들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번 회의 기간에 미국의 지도력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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