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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들, 고유가 바람 타고 ‘이슬람’으로 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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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12면

6일 카타르 법과대학에서 ‘이슬람법’ 연수에 들어간 사법연수원생 강윤희·배지영·최유리씨(왼쪽에서 넷째부터)가 환영 행사에 참석해 대학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둘째는 김종용 주 카타르 대사. 대학측은 한국 연수원생들이 정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특별 배려를 했다. 사진은 현지 신문인 AL RAYA에 실렸다. [사법연수원 제공]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박문학(31)씨가 LG전자 현지 법인에 출근하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거리엔 예배 시간을 알리는 무엣진(성직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숙소 부근에 있는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매일 들려오는 무슬림의 기도 소리에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문화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샤리아(이슬람 종교법)가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거죠.”

아주 김진한 변호사

카타르 도하. 배지영(33·여)씨가 최유리(27·여), 강윤희(26·여)씨와 함께 카타르
법과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배씨에게 중동인은 더 이상 ‘CNN 뉴스에 나오는 분노한 군중’이 아니다. “이슬람권 은행은 이슬람이 금지하는 산업에 대출할 수 없어요. 도박이나 술, 돼지고기와 관련된 업종이지요. 이슬람 국가와의 교역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 이런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터키 이스탄불. 이주희(29·여)씨는 터키에서 가장 큰 로펌인 P&P에서 변호사 일을 배우고 있다. 그에게 로펌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이다. 동네에서는 검은 베일로 온몸을 가린 여성과 마주치지만, 여성 변호사 중에 스카프를 쓴 이는 한 명도 없다. “같은 이슬람권이라고 해도 터키는 스펙트럼이 넓어요. 케말 아타튀르크의 근대화 혁명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법률 체계에도 이슬람적인 요소가 전혀 없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사법연수원 2년차’. 지난해 2학기 ‘이슬람법’ 과목을 수강한 연수원생 가운데 9명이 이달부터 이슬람권에서 현지 연수를 하고 있다. 이정민(판사) 연수원 교수는 “이슬람법 과목이 지난해 처음 개설됐는데도 수강 제한 인원 120명을 채울 정도로 연수원생들의 관심이 높았다”며 “지난해 12월 당시 조근호(현 대전지검장) 부원장이 현지를 방문해 연수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연수원생들의 현지 연수는 ‘무모한 모험’이 아니다. 로펌들의 진출은 이미 가시화한 상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은 법무법인 아주(亞洲)다. 지난해 카자흐스탄 알마티·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이상 7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11월) 등 6곳에 해외 사무소를 열었다. 올해 들어서는 베트남 하노이와 캄보디아 프놈펜에도 나갔다. 김진한 대표 변호사는 벽에 붙은 세계지도에서 사무소 위치를 짚으며 “로펌 업계의 KOTRA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의 개발 붐이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옮겨가고 있어요.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같은 변방, 체제 전환국에 숨겨 있는 투자 정보를 찾아내고,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주는 종합 컨설턴트 역할을 변호사가 맡아야 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국내 법률시장의 빗장이 풀리는 마당에 법률 자문에만 매달려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현지에 1~2명씩 모두 11명의 변호사를 파견했고, 국내 사무실에서 변호사 9명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지인 변호사도 채용했다. 체재비와 사무실 운영비 같은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탓에 손익 분기점을 언제 넘기느냐가 숙제다. 그러나 사무소 개설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업들의 법률 지원 의뢰가 이어지고 있다. ㈜유성금속의 카자흐스탄 규소광산 채굴권과 ㈜네오플랜트의 우즈베키스탄 규소광산 개발 계약과 관련해 법률 자문을 맡았다. 네오플랜트의 경우 초기 자금만 1000만 달러(약 100억원)가 드는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왕민 변호사는 “중앙아시아와 중동에 돈이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추세”라며 “부동산 개발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까지 가세하고 있다. 로펌 업계 5위권인 화우는 1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사무소를 냈다. 초대형 부동산 개발을 추진 중인 국내 건설업체 ‘지송코리아’와 동반 출국했다. “전체 사업 규모만 3조~5조원에 달합니다. 국내 금융권에서 일으키는 프로젝트 파이낸싱만 6000억원으로 추정되고요. 이번 법률 자문만으로도 충분히 사무소를 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천연가스 위에 떠 있는 나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원 매장량이 많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에너지 개발 쪽으로 업무 영역을 넓혀갈 수 있지요.” 현지에 파견된 김한칠 러시아 변호사의 얘기다.

중앙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이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다는 점도 타슈켄트를 전초기지로 삼은 이유다. 김 변호사는 최근 키르기스스탄에 출장을 다녀왔다. 이스쿨 호수에 국내 기업이 리조트를 개발하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토지 거래 계약이 합법적으로 됐는지 ▶대출 시 담보를 잡을 수 있는지 ▶수익을 국내로 가져갈 수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 작업이다.

김 변호사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투자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법률적으로 꼼꼼하게 분석한 뒤 신중하게 접근해야 안전하다”고 지적했다. 업무 파트너는 바자로프와 알리모프, 두 현지인 변호사다. 5, 6년차 경력에 20대 후반인 이들은 일이 바쁠 때는 김 변호사와 함께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법무법인 정평은 지난해 12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사무소를 냈다. 율촌은 우창록 대표 변호사가 지난해 말 모스크바와 알마티로 현지 답사를 다녀왔다. 태평양도 두바이 사무소를 설치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다.

변호사 업계에선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변호사는 “법조인들은 기업 마인드가 부족해 해외에 진출하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작지 않다”며 “해외 사무소 설치를 국내 홍보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변호사들을 해외로 나가게 만드는 ‘배출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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